[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연선] 작년 8월 혼자 사는 여성의 집 문 앞에 한 장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 해당자이십니다. 댁에 아무도 계시지 않아 다시 방문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쪽지에는 가임기에 해당하는 여성의 출생연도와 함께 ‘조사 해당자’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이 작은 쪽지는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어 1인 가구 여성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출산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출산력이란 현실적으로 출산을 할 수 있는 제반 여건과 출산 이후 양육 문제, 해당 국민의 출산 의지를 포괄하는 종합적 개념이다. 출산력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조출생률, 일반출산율, 연령별출산율, 합계출산율 등이 있다.

출산력은 인구의 생물학적 가임능력, 즉 잠재적 출산수준과는 다른 의미이다. 가임능력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지만, 출산력은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변동하므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산율보다 출산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년마다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를 한다. 정부의 인구 정책이나 보건/복지, 저출산 분야 정책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이다. 1964년 첫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 50년이 넘었다.

하지만 작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가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출산력’이라는 용어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출산력이라는 용어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가임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며 여성 비하라는 비난이 빗발친 것이다. 그래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에는 “여성이 아이 낳는 기계냐”라는 등의 비판 글이 100건 이상 쏟아지기도 했다.

실제 출산력 조사는 1964년부터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조사로 저출산 대안 정책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한 지표라고 정부가 설명하고 있지만, 출산력이라는 단어 의미 자체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출산력 조사 메모지를 집 현관문 앞에 붙여두고 가는 조사 방식이 여성 거주지를 범죄에 노출 시킨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측은 논란이 거세지자 다음 조사부터는 출산력을 대체할 용어가 있는지 검토하고 ‘조사 메모지’ 대신 앞으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낮은 봉투를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혼자 사는 여성은 매년 늘어나지만, 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범죄에 쉽게 노출이 될 수 있고 물리적 공격을 여성 혼자 막아낼 수 없다는 공포가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만연하기 때문이다.

출산력에 대한 조사가 각종 범죄에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에 대한 시대착오적, 성차별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더 여성의 입장을 배려해 세심한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