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디자인 이연선] 꽃목걸이를 건 아이와 그런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그리고 이를 즐겁게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 모두 못 먹고살던 시절, 통통하게 살이 오른 우량아들을 보며 내 아이도 저렇게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대리만족을 얻었던 대회. ‘우량아 선발 대회’입니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우량아 선발 대회. 이는 과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기관과 각 방송사가 후원하고 분유업계 등에서 활발하게 개최했던 이벤트였습니다. 80년대 이후로는 뜸해지면서 88올림픽 이후에는 거의 볼 수 없게 됐지만, 당시 우량아 선발대회의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일본인 자녀들의 양육 상태는 좋았으나 조선 아동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해 발육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20~30년대까지 아이들의 건강을 확인하는 다양한 건강 아동 선발대회가 열렸습니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에는 어린이날 즈음 우량아 선발 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정부에서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 정서나 건강을 생각해 우량아 선발대회를 적극 홍보했죠.

국민들도 포동포동 살찌고 덕성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우량아로 선발되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는 자라나는 어린이라도 튼튼하고 건강해야 우리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고, 또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부모들의 소원도 담겨 있었죠.

그러나 우량아 선발 대회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1960년대 들어서는 분유회사가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우량아 선발 대회가 열리기 시작한 겁니다. 점차 자본주의에 물들기 시작하죠.

70년대 들어 가장 유명했던 우량아 선발 대회는 문화방송이 주관하고 남양유업이 후원한 전국 우량아 선발 대회였습니다. 우승자에게는 1년 치의 분유와 상금이 선물로 주어졌고, 수상 아기 중에서는 분유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국 우량아 선발 대회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못 먹는 아이가 줄고 아기들을 상업화한다는 이유로 결국 1984년 폐지됐습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당시, 우리들은 유독 살이 포동포동 오른 아이들을 무조건 건강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곧 우량아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그 인식이 달라져 살이 많이 찐 아이가 건강한 아이라는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분유보다 모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바로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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