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조재휘 수습기자 / 디자인 이연선]

▶ 소크라테스 (Socrates)
▶ 출생-사망 / BC 470 ~ BC 399
▶ 국적 / 그리스
▶ 활동분야 / 철학

문답을 통해 사람의 무지를 깨닫게 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산파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의 직업을 빗대어 자신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 이름 붙였다.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구실만 하는 존재일 뿐, 산모 대신에 아이를 낳아줄 수는 없기에 진리는 배우는 사람이 산출해내는 것이지 스승이 대신하여 낳아줄 수는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으로 진리를 상대적 또는 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또한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 절제, 용기 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화를 끼쳤으나,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 등의 출현이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되고,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 40표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 너 자신을 알라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학자였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아폴로 신에게 가장 현명한 사람을 물었고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는 대답을 듣는다. 이 소식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주지만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지 않는다. 평소 자만하던 사람들보다 적어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하나 더 알고 있다는 이유로 가장 현명한 아테네인으로 선택받은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교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들
- 도덕론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전반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기여서 개인윤리 타락이 극심한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여러 악덕을 무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덕은 이성적 사고의 기초 하에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덕의 확대는 사회를 더 이성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선을 중시하여 토론 과정에서도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사후 스토아학파에 의해 계승됐으며, 기독교의 윤리관에도 큰 영향을 줬다.

- 영혼 중심적 사고
소크라테스는 육체와 영혼, 이원론자였다. 육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 지식은 영혼 안에 내재된 개념이라고 봤으며 영혼은 불멸한다고 봤다. 즉 인간은 영혼을 소유한 존재이지만, 육체의 감각적 요소들로 인하여 영혼에 내재된 진리를 통찰하는 것을 계속 방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해야만 지식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극복 방법은 바로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산파술로 감각으로 인해 얻은 여러 오류를 하나씩 잡는 것에 있다고 봤는데 이러한 신념으로 인해 죽음을 영혼이 육체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을 긍정하기도 했다.

-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듣는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 자체를 듣는 이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토론을 즐겼는데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주는 것보단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끝없이 질문했으며, 이러한 변증의 과정을 통해 진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일생 동안 자신이 직접 쓴 책도 없고 문학적 흥미도 없었던 소크라테스. 하지만 끊임없이 진리에 가까워지려 노력한 그의 자세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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