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연선] 명실공히 자유 민주주의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정말 개개인에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가끔 일상에서 한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 개인의 자유를 누리며 살 때보다 내가 속한 다수에 편승해 물 흐르듯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이 정치든, 직장생활이든, 학교생활이든 말이다.

그나마 의식이 있는 가운데 다수의 단체에 속해 살아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선택에 있어 또는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 의식 없이 그저 다수에 묻혀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레밍 신드롬’이 되어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쫓아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레밍 신드롬이란, 레밍(Lemming)이라 불리는 설치류 ‘나그네쥐’와 효과(effect)가 합쳐진 말로 나그네쥐 효과로 해석된다. 집단생활을 하는 나그네쥐는 개체 수가 늘어나면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때 수많은 ‘레밍’ 개체가 개별 행동은 일체 하지 않은 채 우두머리만을 졸졸 따라 다른 서식지까지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물론 무사하게 이동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만약 우두머리가 절벽/호수/강 등 위험 지역으로 선행하게 되면 따르던 무리가 줄줄이 어떠한 위험도 감지하지 못한 채, 절벽과 호수로 뛰어드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나그네쥐 레밍의 ‘우둔한’ 면에서 착안한 ‘레밍 신드롬’은 주로 누군가 의식 없이 맹목적으로 다수에 편승 하는 경우를 ‘비판’할 때 사용된다. 이는 특정 정당과 이념에 편승한 정치인을 일컬어 사용되기도 또 정치를 대하는 여론을 향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 외 회사 등 단체 생활을 하는 대중에도 사용되는데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상황이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때, 혹은 그러한 상황이 예상될 때, 부정적으로 이르는 예민한 말이므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실제 몇몇 정치인들은 여론을 향해 레밍 신드롬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뭇매들 맞기도 했다. 지난 2017년 7월 충정도 지역 수해피해 당시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레밍’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유례없는 폭우로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등 충청도 지역이 물난리를 겪는 도중 김 의원은 유럽 연수를 떠났다. 이에 대해 외유성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일자 김 의원은 "세월호 때부터 국민들이 레밍 같다"고 발언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점차 퍼져나갔고 반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에 김의원은 "맹목적으로 어떤 현상을 추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레밍 신드롬'을 설명하려 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이 함부로만 아니라면 레밍 신드롬 경향에 대한 적절한 경고는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특정한 자극이 없는 단체사회는 자칫 일부 우두머리에 의해 방향이 정해지고 거기에 익숙해진 다수는 자신이 따르는 방향이 옳고 그른지 판단 없이, 그저 한치 앞 절벽도 바라보지 못하는 나그네쥐처럼 비극을 낳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의 구성원은 현재 ‘레밍 신드롬’에 빠져 코앞으로 다가온 절벽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레밍 신드롬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한 평가 먼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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