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화 된 1910년대에는 국권 상실로 인해 주체적인 문명 개화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면서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아 의식이나 기법이 기존과는 새로운 면모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광수와 최남선의 2인 문단을 중심으로 하는 계몽주의 문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3·1운동이 펼쳐진 1920년대 전반에는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문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신문과 각종 동인지 및 종합지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는 사회주의가 확산되어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념적 논쟁과 함께 계급문학 운동이 전개된다. 

1920년대 전반에는 사회주의적 정치성을 띠고 신경향파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프로 문학의 전신으로 불리고 있으며 백조파와 창조파의 낭만주의 및 자연주의 경향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현실 생활 특히 빈궁을 주로 표현하는 반항적이고 관념적인 계급의식 문학을 주창하였으며 개벽 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25년에는 심대섭(심훈)을 중심으로 하는 염군사와 김기진, 박영회 중심의 파스큘라가 예술을 무기로 하여 조선 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목적으로 한다는 기치 아래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 Korea Atrista Proleta Federatio / 카프)를 경성해 정치투쟁을 전개하였다. 

또 최남선의 논문 ‘조선 국민문학으로의 시조’에서 국민문학이라는 용어가 비롯하여 국민문학파가 형성되었다. 이 파는 문학을 정치에 예속시키고 민족성 대신 계급성을 중시하는 프로 문학 세력에 대항하여 민족주의 문학을 주장하고 전통을 존중하며 국민적인 공동의식을 중시하였다. 최남선,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이 참여하였다. 

그런가하면 프로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절충론을 주장하고 나선 이들도 있었다. 양주동, 염상섭을 위시로 한 절충파들은 주로 문예 공론을 통해 이론을 전개했는데 결국 1930년 이후 프로 문학과 대립하게 된다.

러시아 혁명 후 혁명의 실천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았으나 혁명 운동에 동조적인 입장을 취한 문학 경향을 동반작가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카프에 가담을 하지 않았으나 프로 문학에 동조했던 작가들을 의미하며 유진오. 이효석, 채만식 박화성‘등이 여기 속한다. 

또 극예술협회와 토월회의 결성을 계기로 기존의 신파극의 통속성을 넘어선 사실주의적 성격의 본격적 근대극의 면모를 갖추게 되며 영화의 등장으로 춘향전이나 장화홍련전 등의 고대소설이 시나리오로 각색되었다. 

1926년에는 나운규가 제작한 무성여화 아리랑이 개봉되었는데 작품의 주제가 항일 민족 정신으로 일관하였고 전통민요인 아리랑과 접맥시켜 민족의 혼을 되살려 놓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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