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의 현실적 한계로 조선인에 대한 과학 교육은 거의 전무하였다. 이에 민족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우리 민족이 일제를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의 진흥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에 동아일보 등의 민족 언론들과 잡지에서는 과학의 대중화를 주장하였고 이에1924년 발명학회와 과학 지식 보급회 등의 과학 연구단체들이 창립되었다. 발명학회는 과학 잡지로 ‘과학 조선’을 간행하였고 ‘과학의 날’을 제정하였다. 또한 과학지식 보급회는 과학 도서를 간행하고 강연회 등을 통해 과학을 대중화 하고 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과학 연구단체들은 전국적으로 지부를 설치하는 등 조직이 확대되었지만 일제는 우리 국민들이 과학에 눈을 떠 국력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였고 결국 1937년 친일 어용 과학단체에 강제로 합병을 시켜 과학 운동을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일제는 자신들이 서양의 과학 문물을 잘 받아들여 급속도로 성장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과학 수준을 높이는 것에 매우 경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족주의 좌파(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일제의 감시와 압박으로 인해 대부분 국외로 망명하여 국내에서는 그 세력이 크지 못하였지만 일부 국학자와 종교인들은 민족문화를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항일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

주시경의 제자인 장지영, 김윤경 등 주시경 선생의 제자이자 서울의 사립학교 교사들이었던 이들은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한글 연궈와 함께 강습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한글 보급 운동에 앞장섰으며 ‘한글’이라는 잡지를 간행(1927)하여 그 연구 성과를 정리하였다. 이들은 최초의 한글날인 가갸날(1926.09.29.)을 제정하였고 국민들에게 우리말 쓰기를 권장하는 운동을 펼쳤다.

1931년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어학회로 개편되면서 더욱 발전된 연구를 진행하였다. 지방 강연회 등을 통해 한글 보급에 주력하였고 국어사전 등 다수의 서적을 출간하였다.

이런 조선어학회를 그냥 둘 리 없는 일제였다. 일제는 1942년 10월 ‘함흥학생 사건’을 조작(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귀향 도중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초를 하다 한 학생의 집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고 꾸지람을 받았다는 일기의 내용을 독립운동을 한다는 단서로 조작한 사건)하여 조선어학회를 독립 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회원 29명을 체포하였다.

일제는 또한 ‘우리말 큰 사전’의 원고를 몰수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윤재 등은 고문에 의해 옥사, 최현배, 이극로 등 다수 인사는 투옥되었다. 이후 일제는 ‘한글’잡지를 폐간하고 조선어학회를 해체하였다.

일제는 우리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특히 경계했다. 자신들이 교육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은 국민들의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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