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연선]

▶ 에이다 러브레이스 (Ada Lovelace)
▶ 출생-사망 / 1815.12.10. ~ 1852.11.27.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수학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 온 컴퓨터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언어. 이처럼 중요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의 기본 개념에 대해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계산기조차 개발되기 전 이미 최초로 정리 한 바 있다. 이에 1980년 미 국방부는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을 완료한 후 이 언어를 ‘에이다’라고 불렀다.

- 시인의 딸...하지만 수학과 과학에 몰두해야 했던 운명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당시 낭만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바이런과 이자벨 밀뱅크라는 여인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바이런은 가정보다는 자신의 뜻에 따라 방랑하며 살아가는 타입의 성격으로 부부사이에 상당한 갈등원이 되었다. 바이런과 이자벨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어 에이다는 걷기도 전 아버지와 헤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다 8살 되던 해 아버지 바이런은 객사하게 되고, 이에 이자벨은 혹여나 에이다가 그의 아버지를 닮을까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전문이던 문학과 관련한 학문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고 일부러 수학과 과학에 저명한 학자를 가정교사로 붙여 그것에 몰두하게 했다.

- 세기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와의 만남
그렇게 에이다는 어머니의 뜻대로 수학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러자 부유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더욱 실력 있는 가정교사를 찾아주기 위해 애를 썼고, 에이다가 18세 되던 해 당대 수학과 과학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던 찰스 배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에이다는 당시 차분 기관(기계식 계산기) 연구에 몰두하던 찰스 배비지의 학식에 감명한 나머지 향후 그의 연구를 돕게 되는데, 특히 그의 신임을 받아 여러 중요한 서적의 번역을 맡기까지 한다.

- 따분한 결혼 생활 속에 단비처럼 찾아온 기회
당시 시대적 관습, 특히 귀족 가문의 딸이었던 에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무살되던 해 윌리엄 킹 남작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귀족부인의 생활의 이어가던 에이다였지만 내면의 염증은 깊어져만 갔다. 그때 에이다는 스승이던 찰스 배비지에게서 반가운 제의를 받게 된다. 당시 찰스 배비지의 차분 기관 연구 결과를 잘 정리한 프랑스어 논문이 있었는데, 이를 자신의 차분 기관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에이다에게 번역을 부탁한 것이다. 그녀는 무료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번역본 완성에 매달렸고, 무려 9개월의 혼신의 작업 끝에 차분 기관에 대한 소견과 해석, 예측까지 잘 담아낸 두 권의 책을 찰스 배비지 앞에 내보였다. 그리고 이를 접한 찰스 배비지는 ‘나보다 내 차분 기관을 더 잘 알고 있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 시대를 앞서나간 프로그램 언어에 대한 에이다의 해석
당시 에이다가 발간한 책 중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분석]에는 찰스 배비지 그 이상의 에이다 본인의 해석과 예견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특히 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주요 개념이기도 한 계산이 반복되도록 하는 ‘루프(loop)’, 필요할 때마다 공식을 다시 사용하는 ‘서브루틴(subroutine)’, 구문을 건너 뛰어 실행하는 ‘점프(jump)’, 조건식이 달린 구문인 ‘if’ 등 당시 시대에서는 원리와 개념이 전혀 없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던 것이다. 또한 그녀가 작성한 한 책에는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방식들이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는 현시대의 ‘알고리즘’ 개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대는 에이다의 뛰어난 해석과 예견들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그렇게 스승의 칭찬만을 남긴 채 그녀의 서적들은 덮어지게 되었다.

- 불우한 운명, 젊은 나이에 결국 아버지의 곁으로
너무 앞선 개념들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에이다의 해석은 물론 그녀의 스승이던 찰스 배비지의 차분 기관은 완성되지 못했다. 특히 에이다의 책들은 이후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녀의 권태로움은 깊어만 갔다. 특히 기존에 앓고 있던 우울증은 심해졌고 그녀는 도박에 의존하게 되어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자궁암이라는 질병까지 얻게 된 에이다는, 아버지가 객사했던 나이와 같은 36살에 짧은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전혀 닮지 않기를 바라던 에이다의 어머니는 딸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 곁에 에이다를 묻어주게 되었다.    

이후 에이다의 앞선 개념은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등의 개념이 활발해지고 나서야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많은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차차 거론되고 찬사 받는 것은 물론, 20세기에 이르자 미국의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정립한 언어에 ‘에이다’라는 이름이 명명되기까지 하였다. 그녀의 생전에는 그녀의 업적에 대한 명예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녀를 인류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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