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시사평론가] 19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한마디로 초강수의 처방전을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개혁에는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지만, 사실 공직사회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다. 국민의 공복(公僕)이어야 할 공직자들이 이른바 ‘슈퍼갑’으로 행세하는 모순을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 왔다. 물론 상당수의 공직자들은 나름의 국가관과 책임감으로 무장돼 있다고 믿고 싶지만, 적어도 조직으로서의 공직사회는 국민의 기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직사회가 완전히 ‘변화의 무풍지대’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도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분명히 있을 터이다. 그리고 젊고 진취적인 공직자들 중에서는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동적이면서 유동적인 시대 상황을 선도하기에는 대한민국의 공직사회는 대체로 시대에 뒤처지고 폐쇄적인 구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관료주의의 폐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관료 우위의 시대가 지속돼 왔다. 게다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민간과의 부정 및 부조리의 연결고리가 단단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경제력으로는 세계 상위권이면서도 청렴지수 면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까닭은 정경유착과 더불어 관민유착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 적폐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다.

   공직사회는 이번 기회를 통해 거듭 태어나야 한다. 위로부터의 강요되는 개혁 드라이브에 떠밀려가기보다는 뜻있는 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은 말 그대로 도우미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엘리트라는 의식부터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민간의 역량과 경쟁력이 공직사회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 3.0’을 추진해 왔다. 그 요체는 ‘웹 2.0 시대’의 핵심 가치인 ‘참여, 개방, 공유’이다. 필자는 정부 3.0을 국민의 참여 기회를 드높이고, 관청의 문턱을 낮추거나 내·외부와의 소통과 협업을 중시하며,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도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권위주의와 수직위계주의와 조직이기주의로 통칭되는 관료주의의 폐습을 극복하겠다는 취지다. 그 방향이 올바르고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부 3.0의 추진 주체는 공직자들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자기 개혁이 가능한가에 대한 지적들이 제기돼 왔다. 이런 마당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고도 공직사회의 참회와 정화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공직사회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셀프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외부의 시각이 기우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 ‘슈퍼갑’에서 ‘을’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국회의원들도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는 데 불과한 그들이 ‘선출 권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특권을 누려온 게 사실이다. 그들 스스로 특권 포기를 약속했건만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행정부 못지않게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있었던 해양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여객선 등 대형 선박의 운행 실태에 대한 질의나 추궁이 거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담화는 대한민국의 거버넌스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주권자이자 고객인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를 바로 세워야 할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입장의 차이가 다소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질적 발전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럼에도 야당들은 과도한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 이런 태도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곧 국무총리 인선 등 개각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무총리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 현안을 선도해야 할 국무총리 자리에는 국정에 대한 통찰력과 추진력을 두루 갖춘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각 부처 장관도 이런 기준에서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무위원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국무회의부터 명실상부한 국정협의체로 운영하면 좋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3.0의 가치를 자신의 리더십에도 반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행정부 안에서도, 국회와의 관계에서도 개방적이면서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국정을 혼자 짊어진다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 내각과 국회 등 다양한 국정 주체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참 모습이다. 다소 답답하더라도 정치는 ‘과정의 미학’임을 깨닫고 ‘다함께 리더십’을 구현해 주기를 주문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 후진국’인 대한민국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대한민국이 안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과 원칙이 중시되는 사회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정부와 국회와 공직자의 솔선수범만으로는 실현될 수가 없다. 사회 전반에 법치주의가 하나의 문화로 잡고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도 법치주의의 경시로부터 비롯됐다. 특히 글로벌 시대의 기업들은 나라 안팎의 규범들을 준수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는 청해진해운의 불법행위와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에서 야기됐지만, 시민정신의 중요성도 일깨워주었다. 말하자면 시민정신의 부족 속에서 청해진해운이나 세월호와 같은 사회악이 자라나기 마련이다. 시민정신은 ‘시민의 권리’만이 아니라 ‘시민의 책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권리 의식에 비해 책임 의식이 약한 편이다. 이 양자가 균형을 이룰 때만이 시민정신은 꽃피울 수 있다.

   요컨대 건강한 사회는 국가(정치)-기업(경제)-시민사회라는 삼각축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하다. 어느 한쪽이라도 온전하지 못하면 그 균형은 깨어지고 만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내듯이’ 나쁜 요소가 좋은 요소마저 침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습속과 행동양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즉 ① 원칙 없는 정치 ② 노동 없는 부 ③ 양심 없는 쾌락 ④ 인격 없는 교육 ⑤ 도덕 없는 경제 ⑥ 인간성 없는 과학 ⑦ 희생 없는 신앙이 그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의 인도가 아니라 바로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 적용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경고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바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목표에 치중했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우리 스스로 이런 폐단에 대해 자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목표 지향성이라는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구가할 수가 없다. 이제야말로 ‘더디더라도 바르게 가야 한다’는 철학이 내면화돼야 한다.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창안했던 토머스 쿤은 “위기가 중요한 이유는 도구를 바꿔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라고 설파했다. 대한민국이 기로에 서 있는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 때이다.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행정 개혁과 정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이 낡은 행정과 정치로는 선진국은커녕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이상, 우리 모두 이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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