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6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의 무장투쟁 [키워드한국사]
EP.176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의 무장투쟁 [키워드한국사]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8.04.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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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3.1운동 이후 국외에서의 투쟁도 활발했지만 국내에서의 활동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만주독립군과 연결된 독립군 부대가 결성되어 일제 식민 기관을 파괴하거나 일본 군경과 교전을 벌인다. 또한 친일파를 처단하거나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한다.  

평북 의주 천마산을 근거지로 하여 최시흥이 대한제국 군인들로 천마산대를 조직하였다(1919. 3). 이들은 만주의 광복군사령부와 협조 관계를 맺고 일제와의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대한통의부에 편입된다. 

광한단(1920.2)은 남만주 지역에서 결성된 독립 운동조직이다. 전국 2백여 군에 동지를 배치하여 기관을 두고 폭탄과 단총을 구입한다. 이들은 게릴라전을 투쟁방식으로 하여 국내에 침입하여 총독부 관서를 파괴하고 그 관리들 및 주구를 처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투쟁하였다. 

평북 의주 동암산에서는 신흥 무관학교 출신인 김동식이 보합단(1920. 3)을 설립한다. 보합단은 임시정부에 송달할 군자금을 모금하거나 국내의 친일파를 숙청하는 활동을 한다. 추후 보합단은 대한독립단에 흡수된다. 

1920년 6월에는 대한독립단의 국내 파견부대인 구월산대가 조직된다. 이들은 평안도 지역의 동지 규합과 친일파 및 일본 경찰을 처단하는 활약을 펼치지만 결국 일제에 의해 진압 당하고 만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3.1 운동 이후 일제의 만행과 친일파에 무장투쟁을 통한 경고와 단죄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외국처럼 사전에 큰 조직을 꾸리고 작전을 도모하기에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매우 극심해 그 한계가 있었다. 

이에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자들은 무장투쟁이 아닌 국민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고 구한말 애국 계몽기에 보였던 실력 양성 운동을 통해 민족의 힘을 키우자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하여 민족주의자들은 사회진화론을 사상적인 배경으로 하여 ‘선실력 양성론’을 토대로 언론을 통한 국민계몽 및 문맹퇴치 운동, 민립대학 설립 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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