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현재 소니의 가장 효자 제품은 카메라도, TV도, 워크맨도 아닌 단연 콘솔게임 플랫폼 플레이스테이션이다. 그리고 이 성공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쿠다라기 켄이 있었다. 

‘튀어나온 말뚝의 정점’

쿠타라기 켄 / 위키미디어

소니는 사원을 모집할 때 '튀어나온 말뚝'을 찾는다는 문구로 유명하다. 이는 우리 속담으로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의 ‘모난 돌’에 속하는데,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고 협조성이 없어 조직에서 소외당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은’ 인재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쿠타라기 켄은 그 말뚝 중 최고의 말뚝으로 괴짜의 리더로 불렸다. 그런 그는 소니에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게임 산업이 소니에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으로 쿠타라기 켄은 1980년 닌텐도와 콘솔기기 개발에 착수하였지만 닌텐도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휴가 결렬되었고 이에 자체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 소니는 콘솔 게임기기에 투자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쿠타라기 켄은 집요하게 오가 노리오 사장을 설득하였고 결국 사내 벤처인 SCE(Sony Computer Entertainment)를 설립하여 플레이스테이션을 세계에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3d가 미래다’

콘솔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꾼 플레이스테이션

쿠타라기 켄은 3d 게임이 게임계를 바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따라서 플레이스테이션을 3d에 특화시키고 그로인한 용량부족과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cd를 채택하였으며 추후 원가 절감까지 고려하여 최대한 심플한 구조로 디자인 하였다. 이는 쿠타라기 켄 자신이 훌륭한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화려한 3d 게임을 강조한 플레이스테이션은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게임계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되었으며 게임의 ‘게’와도 관련 없었던 소니의 일등공신이 되어 버렸다. 

‘게임회사의 부담을 줄이다’

업계 최강이었던 닌텐도의 플랫폼에 게임회사가 게임을 발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쿠타라기 켄은 이런 게임회사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자사의 플랫폼에 게임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구동매체로 cd를 채택하여 수요에 맞춰 재고를 생산해 낼 수 있었고 단가가 저렴했다. 또한 소니의 음반 유통 채널을 통해 게임도 적극적으로 유통과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었고 타 플랫폼 보다 저렴한 로열티로 부담을 낮춰버렸다. 이로 인해 스퀘어 등 당시 닌텐도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게임회사들이 소니의 서드파티로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플레이스테이션은 닌텐도, 세가 등 경쟁 기업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심리전의 대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참패를 당한 세가는 차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성능 게임기인 드림캐스트를 발매하여 사활을 걸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쿠타라기 켄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묘한 화술로 플레이스테이션2의 성능을 부각시켜 드림캐스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드림캐스트가 게임부족 등의 부진을 겪을 때 플레이스테이션2는 전작인 플레이스테이션1의 게임을 돌릴 수 있는 하위호환 기능이 있다는 점과 매체를 DVD로 채택하면서 영화 감상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플레이스테이션2

이렇게 모든 것이 가능한 플레이스테이션2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고 소비자들은 플레이스테이션2가 나올 때 까지 관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무리한 마케팅을 했던 드림캐스트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해를 보게 되었고 결국 제대로 된 싸움을 펼치기도 전에 플레이스테이션2는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독특한 시선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힘과 추진력을 갖췄던 쿠타라기 켄. 그는 그 후로 개발 지원 책임자 등을 겸임하면서 서드파티와의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며 콘솔게임계의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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