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일명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8년 만에 진범이 징역 15년을 확정 받으면서 마무리 되었다. 무고한 사람이 10년 동안 징역을 살았으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이 드러나 재수사가 진행됐던 이 기구한 사건은 과연 어떤 사건이었을까? 

2000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택시기사였던 유모 씨(40세)가 불상의 범인에게 흉기로 12군데를 찔려 폐동맥 절단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전북 익산경찰서는 최초목격자인 다방 커피배달원 최모(당시 15세)군을 용의자로 지목, 살인 혐의로 체포하여 조사하였다. 

곧 익산경찰서는 최 군이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 씨를 살해했다는 발표를 한 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으며 검찰은 기소하여 1심 재판부는 최 군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였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의 한 장면

그리고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이 범행을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하여 5년을 감형, 징역 10년을 선고하였고 최 군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여 징역 10년이 확정, 10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하여 2010년 만기 출소하게 된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3년 후인 2003년 전북 군산경찰서는 최 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진범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2003년 6월 5일 전북 군산경찰서는 입수한 첩보를 통해 진범으로 특정된 김모 씨(당시 25세)와 김 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친구인 임모 씨(당시 25세)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김 씨는 진범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사건 정황을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자신 대신 무고한 최 군이 누명을 쓰고 복역하게 된 것을 알고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김 씨의 진술은 친구인 임 씨와 주변인들의 진술과도 상당부분 일치하였고 부검 소견 역시 김 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검찰은 범인이 이미 복역중이며 물증인 흉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고 결국 기소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최 군은 만기 출소를 하였고 박준영 변호사의 설득을 통해 재심을 청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6월 광주고등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이 공소시효를 넘겼다며 대법원에 항고를 했는데 때마침 2015년 7월 속칭 '태완이법'이 개정되면서 2000년 8월 8일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버렸다. 

우연히도 이 사건이 발생했던 날짜가 2000년 8월 10일이었기 때문에 본 사건 역시 태완이법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결국 진범에 대한 재수사 및 공소제기 요건이 충족되어 재심이 확정되었다. 이후 2016년 11월 17일 최 씨는 법원에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검찰은 이틀 뒤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었던 김 씨를 구속했으며, 법원은 2017년 1심과 항소심에서 15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2018년 3월 27일 결국 대법원에서 형이 최종 확정되며 마무리 되었다. 사건 발생 18년만이다.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해 기소되었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도중 진범이 나타났지만 잘못된 수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검찰에 의해 10년을 고스란히 옥에서 살아야 했던 최 군, 아니 이제는 최 씨. 법원은 이런 최 씨에게 형사보상금으로 8억 4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10년의 억울한 옥살이에 비하면 매우 낮은 금액이지만 최 씨는 이 금액 중 5%는 자신과 같은 사법 피해자 조력 단체에게, 나머지 5%는 진범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한 황상만 전 형사반장에 5%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어리고 가난했던 사회적 약자에게 가했던 대표적인 경찰권 및 검찰권 남용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 사건을 대표적인 과오 사건으로 지목하며 직접 사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막상 가혹행위를 했던 경찰과 부실 수사를 한 검사 등 최 씨에게 고통을 가했던 이들은 아직 최 씨에게 어떤 사과도 없는 상황이다.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최 씨의 신체적, 심적 고통은 과연 끝이 났을까.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이런 부당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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