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경기 광주)] 조선시대 도성인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었던 남한산성. 8세기 중반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주장성의 옛터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남한산성’을 소개한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제공-추성호)

남한산성에는 성벽 틈틈이 깃발들이 세워져있다. 조선시대 한양을 기준으로 중앙과 동서남북에 위치한 군대에서는 각각 5가지 동물을 그린 대오방기를 사용했는데, 중앙군대에는 뱀을 그려 넣고, 동서남북으로는 사신을 그려 넣었는데 그중 남한산성 깃발에는 백호를 그려넣은 백호기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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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해발 500m의 높이의 산에 만들어져 있으며, 성벽은 약 12㎞정도의 길이를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라지만 쭉 늘어선 성벽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모습이 남아있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제공-추성호)

성벽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는데, 이는 아군이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동시에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리고 현재 남한산성에는 포를 놓는 약 125개의 군포가 남아있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제공-추성호)

남한산성은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고 있어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성이었다.실제 임진왜란 때도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24년 인조 때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수축된 이후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제공-추성호)

하지만 남한산성은 치욕적인 역사의 장소로도 기록되어 있다. 1636년(인조 14년),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그려진 바와 같이 병자호란 당시 왕은 이곳으로 피신했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8세기부터 2018년 현재까지 우리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남한산성. 앞으로도 후대에 역사를 전하기 위해서는 손실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보존해야한다.

*시선뉴스에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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