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론'의 허와 실
'87년 체제론'의 허와 실
  • 보도본부 | 정광윤
  • 승인 2014.01.1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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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정광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 16일에 “1987년 헌정 체제(이하 ‘87년 체제’)의 극복 없이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인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지하듯이 ‘87년 체제’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기초한 작금의 정치 질서를 일컫는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는 군사 정권 시절의 ‘체육관 선거’와 장기 집권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적인 여망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여당과 제1야당의 나눠 먹기식 중선거구제의 단점을 의식한 대안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명분과 함께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녹아 있었다. 예를 들면 대통령 직선제의 경우에는 야당은 반드시 쟁취해야 할 당면 목표였으니까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지만, 여당의 입장에서는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두 야당 지도자가 모두 출마하면 직선제를 하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5년 단임제는 장기 집권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었지만, 대통령을 하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 많아 누구든 단임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특정 지역에 강한 지배력을 갖고 있던 정파에서 강하게 요구한 사안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87년 체제’의 핵심 근간에는 문제점이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선출 방법을 떠나 대통령중심제 자체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즉 권력의 분산을 요구하는 시대 흐름에서 대통령중심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적으로 주어진 ‘제왕적 권력’을 소신껏 행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면서 말이다. 단임제의 폐해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해야 하고, 그러려면 다양한 정당들이 원내에 진출해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리고 헌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다만 ‘개헌론’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소망스러운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대단히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해 그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왔지만, 지금이 그 적기인지에 대해서는 여론을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대안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한데, 그런 사전 정지 작업 없이 당위론이 난무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개헌론이 국론 분열의 계기가 될 우려마저 있다.

   지금이 설혹 개헌 적기가 아니라 해도 개헌 논의 자체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그 논의는 좀 더 지혜롭게 질서 있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정치인이 개인적인 소신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마치 개헌이 안 되어 대한민국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본말전도나 다름없다. 이런 논법이라면 특정한 방향으로 개헌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 정치가 질적인 도약을 할 수가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런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 오히려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은 권력구조나 제도보다는 정치인의 자질이나 정당 역량의 부족, 그리고 정치 풍토의 후진성에서 기인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래서 ‘대표성의 왜곡’이 심각한 편이다.

   요컨대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개헌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열정만큼이나 이 비정상적인 정치 풍토와 정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열정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013년에 우리 국민들이 확연하게 관찰할 수 있었듯이 대한민국에 존재해서는 안 될 통합진보당은 별도로 치더라도 대한민국 정치권을 이끌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나친 당리당략이 우리 정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적어도 이런 정당들은 개헌을 얘기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지고지순한 권력구조 아래서라도 이런 정당 행태가 지속되는 한, 그 정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를 뿐이다.

   바로 그렇다. 정당 혁신이야말로 개헌보다 더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정당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서고, 정치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제대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든, 분권형제든 그 지도자를 배출하는 정당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국가 경영에 성공할 수가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단임제와 중임제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정당이 엉망이면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각각의 단점만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선거구제 또한 정당의 정상화를 전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전제조건을 외면한 채 개헌론에만 매달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이다.

   오늘날 서구의 정당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혹은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정치나 정당의 힘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정당이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서비스조차도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정당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핵심 당원들 역시 참여와 열정이 떨어지고 있다. 공공 부문 안에서도 관료집단의 파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서구의 정당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 때문인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과 역량은 인정받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당들처럼 당명을 바꾸거나 신장개업하는 행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정당은 공당(公黨)보다는 사당(私黨)에 가깝다. 당을 마음껏 만들었다 없앴다 했던 ‘3김(金) 시대’ 정도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실력자 한두 사람에 의해 당의 노선이나 운명이 좌우되는 현실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서 여-야 간 정치는 차치하더라도 당내 정치가 실종된 것도 계파 독식 혹은 계파 갈등 탓이 크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정당들에게 사당(私黨)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 보니 국회의원 등 핵심 당원들이 당을 옮기는 것은 흔해빠진 일상이고, 이것이 당연지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정당에 과연 어느 당원들이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

   얼마 안 있어 ‘안철수 신당’이 태동할 예정이다. ‘안철수 신당’은 앞서 살펴본 기존 정당들의 낡은 요소를 극복하는 새로운 모델로서 주목받는 측면도 있지만, 그 창당 준비 과정으로볼 때 기존 정당의 폐단을 답습하는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서 ‘사당(私黨)’으로서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또한 기존 정당과는 무엇이 다르고, 기존 정당에 비해 얼마만한 강점이 있는지가 아직 잘 보이지 않고 있다. 만일 ‘안철수 신당’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뚜렷이 보여주지 못한다면, 신당은 수많은 정당들이 명멸(明滅)했던 대한민국 정당들의 기다란 목록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뿐이다.

   ‘87년 체제’가 태동한 해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현존하는 체제와 제도의 개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한꺼번에 바꾸겠다는 ‘총체적 사고’는 지양되어야 한다. 사실 1987년 당시, 야권과 재야세력이 ‘대통령 직선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데는 이들이 집권해서 세상을 뒤집겠다는 발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덕분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탄생될 수 있었지만, 이 정부들의 잘, 잘못을 떠나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만큼은 그들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헌법 개정 논의 또한 ‘무엇을 하면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라는 단선적 사고에서 나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단히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세상이지만, 지금 시대의 변화란 한두 사람의 지도자나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교하게 설계되고 고안된 고도의 시스템의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시스템의 개선 또한 점진적이면서 지속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는 편이다. 같은 맥락에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국가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나 일부 논자들의 억견(臆見)으로 헌법 개정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개헌 논의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논자들 스스로 깊은 연구와 집합적 담화를 통해 최적의 대안을 산출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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