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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창] 토머스 에디슨은 발명하지 않은 발명가였다 / 김병용 기자

[시선뉴스 김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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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아 엉뚱한 짓을 많이 했던 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석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학생. 10대 시절, 잡화를 팔면서 동시에 직접 신문을 제작, 판매해 수익을 올렸던 타고난 사업가. 그리고10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 타임지 선정 19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이 남자는 바로,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위키미디어, 토마스 에디슨 국립 역사 공원,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MC MENT▶
학창 시절,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전설인 ‘토머스 에디슨’.에디슨은 발명왕을 꿈꾸는 어린이들의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명왕으로 알려진 에디슨은 사실 ‘발명을 하지 않은 발명가’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에디슨의 일대기를 통해 그 진실을 알아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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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알을 품어 부화시키려고 하는 등 기행을 많이 하였습니다. 당시 매우 보수적이었던 사회는 이런 에디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렇게 석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게 된 에디슨은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하게 됩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위키미디어, 토마스 에디슨 국립 역사 공원,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이후 가정 형편이 좋지 않던 에디슨은 10대 초부터 기차에서 간식이나 잡지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직접 신문을 제작해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죠.

◀MC MENT▶
이후 에디슨은 철도 전신수 등의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독서와 실험에 몰두하며 발명가의 꿈을 키웁니다. 결국,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전업 발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해, 그의 첫 발명품인 전기식 투표 장치를 발명하게 되죠. 하지만 전기식 투표 장치는 빠른 의사결정보다 타협의 과정을 더 중시 여겼던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해 외면당하고 맙니다. 포기하지 않았던 에디슨. 이를 계기로 에디슨은 세상에 필요한 발명을 하기로 다짐하고 그에 적합한 발명품들을 개발하게 되죠.

사진 출처-픽사베이, 위키미디어, 토마스 에디슨 국립 역사 공원,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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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사업가로서의 뛰어난 감각을 발명에 접목합니다. 그 방법은 자신이 직접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미완성 발명품을 개선하여 보급할 수 있는 것으로 재발명하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것들이 축음기, 영사기, 전화, 전기냉장고 그리고 전구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이용해 큰 수익을 얻은 에디슨은 후에 유명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의 초대회장이 됩니다.

◀MC MENT▶
흔히 에디슨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전구는 사실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백열전구는 이미 에디슨 이전에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짧은 수명과 같은 단점들 때문에 상용화하지 못한 거죠. 에디슨은 바로 이 단점들을 보완해 상업적으로 사용 가능한 전구를 발명한 것입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위키미디어, 토마스 에디슨 국립 역사 공원,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에디슨은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 중 다수는 성공을 목전에 둔 것을 모른 채 포기한 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이 밝았습니다. 올 한해는 에디슨의 말처럼, 여러분도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해 목전에 둔 성공을 꼭 잡길 바랍니다.

제작진 소개
책임프로듀서 : 김정우 / 구성 : 박진아 / 자료조사 : 김병용 / CG : 최지민 /  연출 : 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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