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역작을 만났다. 『속삭이는 사회』란 책이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공부한 영국의 역사가 올랜도 파이지스(Orlando Figes)가 소련 체제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다. 무려 1,1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분량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마치 대하소설처럼 세세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고, 소련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제대로 엮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저자는 많은 문헌들에 대한 독해는 물론이고, 러시아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소비에트 체제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 책이 남다른 것은, 이런 치밀하고 오랜 준비 끝에 스탈린 치하에서 살았던 소련 시민들의 내면세계를 낱낱이 파헤쳤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수많은 언론과 평론가로부터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예컨대 이런 반응들이다. “책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 사람들의 삶과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혔다.”, “이 책에서 마침내 기억과 증언의 물꼬가 트이고, 무수한 사람들이 희망, 공포, 그리고 소련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끔찍한 비극의 경험을 소리 내 말하기 시작한다.”
 

   원작은 2007년에, 한글 번역본은 금년 9월에 출간됐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반인륜적인 세상인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하는 책이다. 소련 체제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우선 자국 인민들을 ‘소비에트형 인간’으로 개조하려 했다. 저자는 여기서 모든 비극이 잉태했다고 본다. 특히 전체주의의 전형인 스탈린 체제는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수백만 명의 인민들을 처형하거나 기아 등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 거대했던 소련 체제가 몰락한 것도 체제에만 골몰했지 사람을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제목인 ‘속삭이는 사회’는 체제의 감시와 인민 상호간의 고발이 일상화된 소련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대화를 회피하고 가족들과는 꼭 필요한 말만을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개성을 신장하기는커녕 말살하는 사회, 가족과 이웃과 친지들 사이에서도 상호 불신의 눈길을 보내야 하는 사회에서 무슨 발전과 행복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요컨대 사회주의의 비극은 저 심층에 있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관심과 정서를 체제가 강제로 억누르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련은 몰락했지만, 그 이상의 모순으로 가득 찬 체제가 우리 곁에 있으니 같은 민족으로서 참담할 뿐이다. 그래도 소련 체제는 ‘속삭일’ 정도의 문제의식과 용기(?)라도 있었지만, 북한은 더욱 철통같은 억압과 세뇌로 인민들의 생각마저 얼어붙게 만든, 실로 ‘동토(凍土)의 왕국’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을 탈출하거나, 체제의 모순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미세한 변화일 따름이다. 어쩌면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이 깊다.’는 말처럼 북한 체제의 종말은 임박해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듯이 1980년대 대한민국 운동권은 이 소련 체제와 북한 체제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과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두고 서로 헤게모니 쟁탈전을 전개했다. 1980년대 말에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전자, 즉 PD(People’s Democracy)파는 대다수가 전향했고, 그 중 상당수는 사회민주주의자로 변신해 있다. 후자, 즉 NL(National Liberation)파 역시 영향을 받았지만,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북한 체제에 대한 어떤 믿음 때문인지 아직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NL파 모두가 북한 체제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중심부는 여전히 북한 체제를 더 선호하고 있고,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영향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왜소화된 PD파를 물리치고 진영 내 패권을 쥐고 있다. 수적으로 PD파 등 다른 정파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할 정도이지만, 각종 선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권을 장악하려 할 정도로 당파성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래서 진보 정당 안에서도 NL파 아닌 인사들은 이들에 질려 탈당했고, 지금은 NL파, 그중 강경파가 당을 독식하고 있다.
 

   소련 체제의 몰락이 목전에 있던 당시, 소련 사회주의를 모델로 삼았던 PD파도 ‘역사적 미아(迷兒)’나 다름없었지만, 북한의 실상이 모두 다 드러난 이 시점에서도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NL파 혹은 종북주의자들은, 현상적으로는 ‘집단 체면’에 걸려 있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듯하다. 북한 체제와의 연결고리가 단단하든지, 대한민국 운동권의 헤게모니로부터 오는 기득권이 달콤하든지, 아니면 오래 전부터 견지해왔던 신념을 바꾸기가 민망해서든지, 이 셋 중의 하나 때문일 것이다.
 

   NL파가 득세할 수 있었던 데는 민주당과의 연대도 한몫했다. 민주당이라는 주요 정당의 우산 밑에서 마음껏 활보함으로써 조직을 키우고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민낯이 그 내부에서 샅샅이 폭로되면서 민주당과 정의당도 더 이상 종북주의자들을 보호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1 + 1 = 2’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종북주의자들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1 +1’이 아니라 ‘1-1’일 가능성이 더 높은데도 말이다.
 

   민주당은 작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당연히 이길 것으로 전망되던 선거였다. 그래서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의 선출을 계기로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길’을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또 패배의 길을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왜 패배했는가? 자신들의 진단대로 합리적이지 못했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이 민주당과 한편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시국은 이와 무관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민주당에 대해 종북주의 그룹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북한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권을 맡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은 ‘햇볕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햇볕정책 자체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로서 그럴듯하다. 원칙적으로 여기에 반대할 국민은 많지 많다. 다만 햇볕정책의 결과로서 북한이 얼마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느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민주당이 북한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북한 당국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저자세로 일관해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국민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화와 협력을 지속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북한 당국을 두둔하는 것은 ‘북한의 옷을 벗긴다.’는 뜻의 햇볕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도 민주당 안에는 ‘내재적 비판론’에 입각하여 본의든 아니든 북한 체제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관성이 있다.
 

   민주당은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에 일어났던 일부 교사들과 성직자들의 언행은 참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교사와 성직자들마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하늘을 찌르는 분노를 표하면서도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인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북한 체제와 그 지도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화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 땅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종북주의의 그림자가 대단히 넓게 퍼져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런 교사와 성직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선의의 학생과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설 자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칼 포퍼(Karl Popper)는 “역사에 관한 예언자로 행세하기를 중지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유토피아를 지향한 사회주의를 가리킨 말이다. 유토피아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다. 그런 만큼 그 기획은 야심찼으나,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고,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포퍼의 어법대로 하면 지상에 천국을 만들고자 했으나, 지옥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 지옥 중의 생지옥인 북한 체제를 비호하는 사람들이 되레 큰 소리 치는 대한민국은 정녕 ‘자유의 천국인가’를 묻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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