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보다는 우는 얼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선뉴스 박진아]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올해로 9년. 급변하는 서울문화에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나브로 나는 서울이 좋아졌다.

그중 가장 새로운 것은 대중교통 이용부분이었다.
지하철과 버스의 환승이 가능하고, 대부분 이용되고 있는 버스전용차선은 당시 나에게 신세계와도 같은 것들이었다.

서울 대중교통 개편(버스전용차선) 약 9년. 그동안 나는 버스전용차선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퇴근할 때마다 버스전용차선 때문에 불편해 죽겠어요.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은 서울 시민 아닙니까? 도대체 버스전용차선 때문에 화가 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자동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운전조차 하지 못하는 나는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버스전용차선(버스專用車路). 말 그대로 허가받은 버스만 통행하도록 하여 버스의 통행 속도를 높이고 도로 정체를 피하게 하기 위해 지정한 차선으로, BRT(Bus Rapid Transit/간선급행버스체계)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이 소외받고 있는 것인지, 새롭고 다른 각도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현재 버스전용차선으로 인해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좌회전’과 ‘U턴’ 문제였다.
그중 U턴으로 9년 동안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곳은 대표적으로 ‘홍제동 의주로’, 좌회전이 금지되어 불만이 제기되는 대표적인 지역은 ‘보라매역 주변 사거리’부근 이었다.

그중 나는 취재팀과 함께 차량을 탑승한 채 신길동 보라매역 근처에서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 ‘버스전용차선, 너 되게 낯설다~’

취재는 보라매 역 근처에 위치한 보라매성모병원에서 신길 삼성 래미안 아파트까지 가보기로 했다. (출발점과 도착점은 좌회전이 금지 되면서 불편함을 느끼기는 부분을 체감하기 위해 임의로 정한 곳이다)

거리 약 897m 도보로 약 13분 정도가 나왔다.

▲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도보로 걸었을 경우 경로

그런데 중요한건 현재 이곳을 자동차를 이용해서 간다면 도보로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가야 한다는 점이다. 보라매 역 방향으로 직진을 한 후 (아래 사진01)

▲ 사진01

대방역 지하차도 옆길에 위치된 U턴 지역에서 U턴을 한 뒤(아래 사진02)

▲ 사진02
▲ 대방역 지하차도 옆길 U턴 지역

해군회관앞 도로를 거쳐 삼성래미안 아파트에 도착하면 된다.
이 거리는 약 3km, 자동차를 타고 약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아래 사진03)

▲ 사진03

하지만 이 거리는 출퇴근 시간이면 여의도 방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항상 정체가 되는 구간이고, 때문에 출퇴근 시간 이 길을 이용한다면 소요되는 시간은 약 35분가량이나 늘어나게 된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약 4800원(주유비 약 521원)을 지불해야 한다.

즉, 도보로 897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자동차를 이용할 때는 약 3km의 거리를, 무려 3배가 넘는 거리의 길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보라매역 주변에 P턴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길을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차가 지나다니기 민망할 만큼 도로는 좁고 위험하며, 실제로 그 길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보라매역 주변 사거리

◇ ‘계산기를 두드려봐. 느낌 아니까~’

그렇다면 예전처럼 좌회전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가상으로 경로를 정한 후 예상실험을 해봤다.

▲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전제의 가상 경로

도보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거리는 약 897m,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약 3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택시를 이용한다면 약 2600원, 주유비는 약 127원 정도가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바다마을과 한성아파트, 삼성래미안, 자이아파트의 주민이 보라매 성모병원까지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면(1042 * 20 = 20,840) 한 달에 약 20,840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전제(254 * 20 = 5080)일 때와 무려 4배 이상의 비용 차이가 나는 것이다.

◇ 불편만 한가요? 더 큰 문제도 있죠

실제로 버스전용차선이 실행되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났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A씨는 평소와 같이 좌회전을 하다가, 버스전용차선으로 들어오는 버스와 부딪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 버스전용차선 시행 이후 좌회전이 금지된 '보라매역 부근 사거리'

신길동에서 20년을 거주 했다는 B씨는(48) “보라매역 근처에서 길을 건너는데... 솔직히 전용차선 이용하는 버스들 급정거, 급출발 하거든요. 이 지역에 산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버스전용차선이 들어서고 불편한 것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민원을 넣어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고요...”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또 다른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C씨는(56) “버스 운전기사들, 분명이 도보하는 시민이 보이는데도 불쾌할 정도로 크락션을 누른다든지 걷는 사람들 바로 앞까지 운전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버스전용차선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버스전용차선 이용은 시민들보다 운전기사들이 더 편한 것 같아요.”라며 호소를 했다.

난폭한 운전과 버스전용차선의 독립성이 이용되면서, 정작 시민들은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생활 9년 동안 다행히도 나는 소외받지 않은 시민이었다. 자동차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그곳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버스전용차선은 ‘날벼락’과도 다르지 않은 시행이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편리함을 느끼기 때문에 버스전용차선 시행은 ‘어느정도 성공’이라고 말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와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생겨났다는 점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버스전용차선을 시행하는 동시에, 좌회전 혹은 U턴이 가능하도록 신호 체계를 고민하고 바꾸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곳에 시청이나 공공기관이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 이었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게 된다.

실제로 신길동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좌회전 신호를 다시 만들어 달라며 시청에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일한다는 서울시청이라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경찰청이라면, 소수 사람들의 목소리에 분명 귀 기울여야 한다. 지난 9년간 수많은 불만을 ‘어쩔 수 없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라는 말로 일관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년이면 버스전용차선 시행 10년. 남은 1년 동안 소수에서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버스전용차선은 시행은 ‘어느 정도 성공’이 아니라 ‘Best of Best’의 시행으로 남을 것이다.

불만과 호소의 목소리가 담겼던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서울시와 경찰청의 지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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