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디자인 정현국] 최근 한 정치인이 정부가 자신의 휴대폰 통신조회를 했다며 조지오웰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행태라고 주장하여 사람들이 빅브라더에 대한 관심을 가진 바 있었다.

정치인도 공포를 느끼는 빅 브라더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소설 1984년에서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모든 국민들은 텔레스크린과 도청기로 감시를 받는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집권당은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라는 문구로 그들이 항상 감시되고 통제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정치적으로 세뇌를 한다.

하지만 빅 브라더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늘 감시와 통제를 받는 국민들에게 빅 브라더는 전지전능한 인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인정할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라더라 불리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붙잡혔고 고문을 당하게 되며 결국에는 “나는 빅 브라더를 사랑해”라며 굴복 당한다.

현재는 정보화 사회다. 이는 곧 정보를 많이 쥐고 있는 것이 곧 힘이라는 의미다. 권력이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빅 브라더라 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과 인터넷, CCTV 같은 감시카메라의 만연으로 누구나 감시를 당하고 도청을 당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만약 정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이것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기게 되고 항상 불안감에 살아야 하며 정부나 권력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은 가차 없이 색출되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빅 브라더는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는 전체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뒤로 빅 브라더가 만연하는 국가는 결코 옳은 국가라 할 수 없다. 이는 국민을 국가의 주인이 아닌 국가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종속자로 보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빅 브라더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 도 없다. 국가의 근간을 뒤 흔드는 인물이나 단체 등의 활동을 외면 할 수 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 브라더라는 개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야말로 최소한을 지켜야 한다.

국가가 항상 개인을 지켜보고 있다는 빅 브라더.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지 않은가? 이미 사회는 빅 브라더가 활동할 수 있기 좋은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국가는 국민들을 주인으로 생각한다면 통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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