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정현국]지난 13일 북한군 병사 1명이 귀순했다. 이 과정에서 귀순 병사는 북한 경계병들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우리 군은 총상을 입은 귀순 병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현장에 가득한 북한군의 총탄 흔적이 그날의 긴박감을 보여주고 있다. 숨 막히는 귀순이 이뤄진 이곳은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JSA(Joint Security Area)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에 위치한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공동경비구역이다. 일반인들에겐 주로 지역 이름인 판문점이라 불린다.

판문점은 6‧25 이전에는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UN의 지목으로 이곳에서 1953년까지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이곳에 천막을 쳐서 1년 9개월 동안 휴전회담을 시작했고, 휴전회담을 마친 뒤 정전협정 조인을 위해 가까운 곳에 목조건물을 지으며 그 형태를 갖추었다. 이후 현재 위치로 이전하게 된다.

JSA는 군사정전위원회(정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는 양측의 휴전 공동 관리기구) 유엔군 측과 공산 측(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 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600m 장방형 지대이다.

JSA는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어 오다가 1971년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등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이나 남‧북한 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JSA가 설치된 이후 쌍방 군정 위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6년 조선인민군 군인 30여 명이 도끼를 휘둘러 주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이후, 양측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표시하여 경비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북한군과 친분을 유지하던 우리 경비병들도 더 이상 북한군을 만나거나 대화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JSA에는 자유의 집, 평화의 집, 돌아오지 않는 다리 등의 건물이 있다. ‘자유의 집’은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로 주로 남북 간의 연락업무를 수행하는 건물로 이용되며, ‘평화의 집’은 자유의 집에서 1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또 3층 구조의 건물로 2015년 진행된 남북고위급접촉이 진행된 곳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주로 이곳에서 포로 송환이 이루어졌고, 포로들이 한 번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처럼 JSA는 분단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현재 JSA는 관광명소로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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