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태웅 / 디자인 이연선, 정현국 ]

핑크색은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딸아이를 가진 친구에게 핑크색 아기용품을 선물하곤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핑크를 여성의 색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핑크색은 사실 남자의 색깔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핑크가 남성의 색이었으며, 어떻게 여성을 의미하는 색으로 바뀐 건지 알아보자.

핑크가 남자의 색이었다는 사실은 17세기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는 왕위를 계승할 어린 왕자들에게 핑크색 드레스를 입혔다. 또 종교적 관행에서도 볼 수 있는데, 권위를 상징하는 핑크색 옷을 많이 입었던 귀족들은 입었던 옷을 교회에 기증했었고, 교회는 이 옷을 손질하여 제단을 장식하는 천과 제례복으로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핑크는 제례의 색이 되었고 그때부터 대림절 셋째 주일과 사순절의 셋째 주일에 가톨릭 사제들은 핑크색을 입었다.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핑크색이 사용됐다. 조선시대 화가 이명기가 그린 조선 중기 작품 문신 허목의 초상화를 보면, 허목은 담홍색의 시복(時服)을 입고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의 초상화에도 기품이 느껴지는 연분홍색의 의관을 입고 있다. 이처럼 분홍은 당시 훌륭한 학자들의 기품과 위상을 표현하는 데 주로 쓰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까지도 핑크는 남자의 색으로 여겨져 왔다. 1918년 미국의 여성 월간지 더 레이디스 홈 저널(The Ladies Home Journal)은 “핑크는 강렬한 칼라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더 적합하다. 하지만 블루는 좀 더 부드럽고 앙증맞아서 여자아이들에게 잘 어울린다.”고 당시 핑크라는 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핑크와 블루의 시각과 매우 달랐다.

1940년대 들어 핑크는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분홍과 파랑: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분간해내는 미국>의 저자인 메릴랜드대학교의 역사학자 파올레티(Jo B. Paoletti)에 따르면 여자아이에게 핑크색 옷을 입힌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원래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흰색 옷을 입혔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종의 사업적 전략으로 아이의 성별에 따른 색깔을 정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남녀를 색으로 구분하는 사례는 많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남녀화장실을 색으로 구분한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붉은색. 미국에서 출발한 남녀 색 구분이 사회적으로 더욱 심화되면서 기품과 권위를 상징하던 핑크색의 상징은 여성스러움의 의미로 변했고 더 이상 남성이 아닌 여성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색은 어떠한 사회에서 다양한 의미가 쌓이면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예를 들어 흰색은 백의민족인 우리나라의 상징색이면서 프랑스의 국기에서는 평등을, 복싱에서는 기권의 의미로도 쓰인다. 색은 한 국가, 문화, 젠더에 이르기까지 조용하면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침묵의 언어다.

핑크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색깔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색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사실상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색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질서와 구분을 위해 일부 필요하다. 다만 성을 의미하는 젠더가 유연해진 시대에 이제는 남성들도 자신감 있게 핑크색에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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