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는 문제의 끝이 아니다. 진작부터 숱한 음모론이 난무해 온 데다, 사퇴를 둘러싸고 정부 안팎에서 또 다른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문제에 관한 정부와 야권,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의 대립 양상이 검찰총장의 사퇴 때문에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이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여야 간의 대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게다가 민생이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 시점에서, 또 현직 국회의원이 주도한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한 마당에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제도권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증폭시키는 데 익숙한 대한민국 제도권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婚外) 아들 문제는 엄연히 말해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검찰총장 직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적어도 선진국의 잣대에서는 그렇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하게 된 것은 채 전 총장의 초기 대응이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보도가 나온 이상, 채 전 총장은 그 사실관계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럼에도 채 전 총장은 “잘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남의 일인 양 치부했다. 그 후에 사건이 커지기 시작하자 정정 보도 청구를 하고 유전자 감식까지 제안했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었다. 

   학적부에 ‘채동욱’이라는 사람의 아들로 등재되어 있는 채 아무개 군의 아버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인지 아닌지를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채 전 총장은 검찰총수 직을 던지면서까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문제의 여인과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 여인이 자신의 아들의 학적부에 올리면서 ‘채동욱’이라는 이름을 차용한 것 자체가 이들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조선일보의 보도가 진실임을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유전자 감식을 해보면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있겠지만, 이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채 전 총장이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진 데는 이 점을 노렸을 수도 있다. 즉 채 전 총장과 채 군 간의 부자관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퇴를 하면 자신의 결백을 믿는 여론이 더 우세하리라는 믿음 속에서 이를 결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사생활 문제를 검찰 조직과 연결시킨 것은 검찰 최고 간부로서 공(公)과 사(私)를 분간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설령 조선일보의 보도에 어떤 복선이 있더라도 그 자신만은 나 홀로 진실을 규명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 조직 흔들기’라고 호도함으로써 의혹을 더 키운 양상이 되었고, 급기야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파급시키는 데 결정적인 원인 제공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검찰총장으로서 자격 미달인지 모른다. 검찰 간부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상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사적인 문제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직권 남용이다. 

▲ 출처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왜 이런 보도를 해야만 했을까’ 라는 궁금증 또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신문 매체 가운데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고 있고, 그동안 ‘황색 저널리즘’에 대해 그 어느 매체보다도 비판적이었던 조선일보가 이런 보도를 한 것이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현직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보기에 따라 심각한 문제일 수는 있다. 말하자면 검찰총장으로서의 직분에 하자가 된다는 판단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도 가능하다. 검찰총장 재직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닌 데다 채 전 총장의 가족이 법적으로 문제 삼고 있지 않는 이상, 이것은 한 자연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일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말하자면 조선일보는 정론지로서의 윤리 강령을 지켰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아무튼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온 후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그 직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이라면 허위 발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그동안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드러났기 때문에 검찰 조직을 지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야권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의 프레임에서 보면 채 전 총장의 사퇴는 이를 원하던 사람들의 의도에 맞게 전개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호사가들의 추측일 수도 있다. 특히 조선일보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채 전 총장의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라는 야권과 진보 매체의 주장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국가정보원이 정보를 제공했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들은 조선일보가 허위 보도를 한 것처럼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채동욱 검찰’에 대한 하나의 아이러니는 야권과의 관계이다. 통상적으로는 야권과 권부(權府)의 핵심인 검찰총장은 갈등관계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유독 채동욱 전 검찰총장만은 야권의 옹호를 받아 왔다. 주지하듯이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하는 등 채 전 총장이 취임한 후에 검찰이 보인 태도가 야권의 입장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을 ‘공공의 적’으로 삼고 있는 야권에는 검찰이 그야말로 천군만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비록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이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여권이 정치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채 전 총장의 교체를 시도했을 것이라 믿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는 야권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휘하의 검찰을 그렇게 신뢰하면서, 더욱이 이미 검찰이 기소를 해놓은 사건에 대해서 무엇 때문에 장외 투쟁을 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야권 일각에서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특별검사제 도입’ 운운하고 있는데,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여기에 대해 민주당 등 야권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게다가 국가정보원을 끌어들인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조선일보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국가정보원과 연결 짓는 것은 비약이다. 요컨대 ‘검찰=선, 국가정보원=악’이라는 야권의 도식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일로 검찰총장이 도중하차하고, 사회적 이슈로 비화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언제까지 대한민국 제도권은 이런 식의 소모전으로 날을 지새울 것인가? 국리민복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제도권이 자신들의 권력과 이해관계에만 골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국력의 수준에 비해 제도의 신뢰성이 낮은 편인데, 이런 일이 대서특필되면 당연히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탈주가 이들의 과잉 권력과 ‘그들만의 리그’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다. 이 점에서는 행정부, 검찰, 사법부, 국회, 정당, 언론 할 것 없이 피장파장이다.

   대한민국은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 음모’를 주도해도 될 만큼 자유가 넘치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언론의 자유 또한 만개(滿開)한 편이다. 언론 매체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각종 집단 시위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어떤가? 검사나 판사가 피의자나 피고인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여전히 통용되는 ‘자유로운 나라’이다. 또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살상용 무기인 최루탄을 터뜨려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참다운 ‘자유 국가’이다. 이것이 언필칭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26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절제하지 않고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망각한 대한민국의 제도 권력과 시민정신은 ‘민주주의의 적’임을 우리는 지금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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