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국회출입기자 / 박용한 북한학 박사] 

지난 주말에 가을 외투를 벗었다. 벌써 겨울이 와서다. 며칠 전 싸늘해진 가을 날씨에 꺼냈지만 벌써 철 지난 애물단지다. 아쉽지만 좀 더 두꺼운 외투로 갈아입고 겨울 추위에 대비한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벌써 봄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아니라 한반도 정세 얘기다. 당장 싸울 기세를 보였던 북한과 미국이 잠잠하다. 한반도에 혹한의 계절이 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지나갔는지, 아직 멀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거꾸로 가지 않았다면 일단 이번 겨울이 지났을 텐데 뭔가 불안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를 다녀가면서 침묵은 더욱 깊어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트랙터 공장을 방문했을 뿐이다. 기세 좋게 탱크라도 타고 무력시위에 나설 줄 알았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평양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반미 규탄 목소리만 올렸을 뿐이다. 뭔가 미지근하다.
 

낯선 평화에도 이유는 있다. 그동안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협상을 앞두고 전략적 목표도 확보했다. 전투를 앞두고 최후 진지를 구축하고 공격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다. 본격적인 싸움을 앞두고 상대방 준비상태와 전략도 계산해 뒀다. 지난봄부터 말 폭탄을 쏟으면서 상대방 눈치를 봤다. 실제로 전략무기가 한반도에 출동하거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있었다. 그러나 협상을 앞두고 잘 짜진 계획대로 준비운동을 했을 뿐이다. 상대방에게 겁도 주고 회유책도 암시하면서 어떤 수준에서 합의 볼 수 있는지 탐색하던 과정이다. 연습은 끝났다. 이제 실전이다. 이번 주 수험생들은 지진 때문에 미뤄진 수능 시험을 보게 된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라는 고난도 시험을 앞두고 있다.

문제 1) 북한

북한은 협상장에서 쓸 카드를 확보했다. 협상이 실패하면 핵무기 실전배치에 바로 들어간다. 일단 마지막 퍼즐은 맞추지 않고 남겨뒀다. 협상을 하려면 뭔가 거래할 여지가 필요해서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여차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다. 미국과 거래를 앞두고 숨고르기 했다고 봐야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 즉 현존하는 핵무기는 인정받겠다는 복안이다. 그래서 도발을 자제하고 협상하자는 노림수다. 북한은 공존이냐 공멸이냐 협박장을 내던졌다. 다시금 ‘벼랑 끝 전술’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나마 효과 있는 전략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기술력을 보여주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무기 실험을 한 뒤 미국에 공을 넘겼다.
   
문제 2) 미국
미국은 북한을 압박할 분위기를 만들었다. 북한이 몸값을 올리는 동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나서 강조했던 군사 옵션은 협상장에서 카드로 쓸 수 있다. 트럼프는 기업가 출신이라 협상가로 불린다. 그러나 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도 협상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국익을 걸고 국제무대에서 외교 전쟁을 한다. 외교 협상에 있어서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다. 트럼프가 등장했다고 외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무당이 사람 잡을 수 있다. 트럼프가 지나치게 나서면 국제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몇 달간 발생한 위협과 혼란도 레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아슬아슬하게 이어왔다. 트럼프와 미국 외교의 공동 작품은 ‘최대 압박과 최대 관여’로 나타났다. 제재와 협상을 동시에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지정하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랐다. 대북 발언 수위도 조절하면서 북미대화를 암기하기도 했다. 클린턴 정부의 채찍과 당근 전략과 뭐가 다를지 궁금하다.
 
문제 3) 중국 
중국은 시진핑 재집권을 순조롭게 끝냈다. 협상장에 나서기 전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집안 문제가 바빠서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고 풀이된다. 한국의 사드 배치 문제도 최근에 해결된 이유와 같다. 지난달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재집권이 순조롭게 끝나자 곧바로 한중관계 해결에 나섰다. 시진핑은 19일 북한에 ‘쑹타오’ 특사도 보냈다. 미중대화도 이번 달 트럼프 방중을 맞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든 현안이 당대회 이후로 미뤄졌다는 해석이다. 중국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미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기 어렵다. 중국이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대화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정답은? 
한국은 급한 불을 끄고 협상장을 열었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었다. 시간을 벌었지만 눈치를 봐야한다. 균형외교로 불리던 그 무엇으로 이름 붙여지든 중요하지 않다. 강대국들에 휩싸인 한반도 운명은 어렵다.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통일해야 할 북한이 있다. 중국과 척을 지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가담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은 중국보다는 미국과 가깝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공유하는 가치가 비슷하다. 중국이 두렵기도 하다. 미국과 동맹을 이어갈 이유는 생각보다 많고 얻는 것도 크다. 북한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보기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없다. 그냥 찍어서 풀 수 없는 문제다. 마음 같아선 사교육이라도 받아서 답을 쓰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아쉬움만 남는다. 정답만 외우고 창조성 부족한 한국 교육의 한계일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외교ㆍ안보 당국의 묘수를 기다린다.

박용한 북한학 박사 /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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