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최지민]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한 일간지를 통해 한국의 노동제도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닮았다고 표현했다. 정부가 후진형 노동제도를 기반으로 억지로 현대의 기업을 감독하고 징벌한다는 것이다. 과연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무엇이길래 한국의 노동 제도를 대체하여 표현한 것일까.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아테네 영웅)가 아버지를 찾아 아테네로 가는 모험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의 모험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악당인데,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손님의 목이나 발을 늘이거나 잘라 잔인하게 죽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잔인한 살인 방법은 이렇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에 숙소를 차려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침대를 제공해 눕혔다. 프로크루스테스에겐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가 있었는데, 키가 큰 손님에겐 작은 침대를 제공하고 키가 작은 손님에게는 큰 침대를 제공했다. 신체에 맞지 않는 침대를 제공하여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서 죽이는 방식으로 살해했다.

프로테세우스의 그리스어 어원이 ‘잡아 늘이는 자’인 이유도 이러한 성향 탓이다. (후에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표현은 최근까지도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억지로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는 횡포나 독단을 의미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을 두고 여야가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서로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안에 갇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짓밟으려는 의도를 가진 채 상대방의 말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단어로 점철시킬 수도 있다. 특히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프로크루스테스는 이미 손님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상대방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가진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세와 함께하여 더욱더 건전한 토론이나 협의가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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