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작년 12월에 있었던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1위인 박근혜 후보와 2위인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3.5퍼센트였다. 득표수로는 약 110만 표의 차이였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격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국민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는 점이다. 즉 ‘야권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더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것은 비록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여하튼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더 강했기 때문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로의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객관적 정황이었다.

   그런데 당초의 예측과는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은 우리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듯이 예상을 뛰어넘는 50대와 60대의 압도적인 투표율 때문이었다. 물론 이 세대들의 투표율이 상상을 초월한 것은 야권 혹은 진보 진영에 대한 심각한 불신 탓이 컸다. 이런 징조는 작년 4월에 있었던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이미 나타났었다. 이른바 ‘김용민 막말 파문’은 민주당의 총선 패배는 물론, 대통령선거까지 어려울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다. 여기서 민주당이 교훈을 찾았더라면, 민심의 경고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아마도 대통령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내 주류인 친노(親盧) 세력의 자만심으로 전화위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당권도, 대통령 후보도 친노 일색이었던 것 또한 대선 패배 요인 중의 하나였다.

 
   앞의 요인들 못지않은 패배 요인을 든다면 역시 ‘이정희 효과’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면 할수록 야권에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그들만 몰랐을까?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가 어떤 존재인가? 종북(從北)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대선일 불과 몇 개월 전에 부정선거의 장본인들이 아닌가? 언필칭 진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낯을 들 수 없을 정도의 패악을 저질렀으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얼굴을 치켜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등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작심했을 터이다. 이정희 후보야 작년 대통령선거 도중에 하차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지만, 그 불똥이 야권 연대의 대표자인 문재인 후보에게로 튈 수밖에 없었다. ‘이정희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만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대선 결과는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정희 효과’는 무척 컸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야권 연대의 위험성을 의식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어제(28일) 국가정보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포함된 지하 혁명 조직이 내란을 음모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이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들이 종북주의자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내란을 음모했다는 발표 앞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물론 그 사실관계의 진상은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방증이다. 통합진보당은 “용공 조작극”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이들의 이런 대응이야말로 그동안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즐겨 써온 수법으로서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용공 조작극이 통용된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민주당을 위시한 대한민국 진보파의 태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통합진보당과 종북 성향의 운동단체들과 이른바 ‘야권 연대’를 해 왔다. 연대 대상에는 종북과는 거리가 먼 진보 세력도 포함되지만, 종북과 연관된 정당과 단체들이 적지 않았다. 멀리는 민주화운동부터 최근의 ‘국가정보원 관련’ 장외 집회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의 촛불 집회와 2010년 지방선거처럼 때로는 재미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년 대통령선거는 야권 연대 혹은 진보 연대의 허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연대는 보수 진영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자아냈지만, 보수-진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꼭 이번 내란 음모 의혹 사건이 아니더라도 종북 세력과의 연대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2012년의 악몽을 재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김한길 대표가 들어서면서 노선을 포함해서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진보·개혁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천명했던 것은 위와 같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의식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에 깊이 빠져들면서 과거의 관성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기소를 해놓고 있는데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에 지나치게 흥분해서인지 스스로 그 덫에 빠지고 말았다. 2008년 촛불 집회는 그것이 대단히 무리가 있었음에도 일정 시기 여론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인데, 국가정보원 문제는 국가적으로 유의미한 이슈임에는 분명하지만 생활고에 지쳐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사안이 아니다. 그야말로 재판부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면서 국가정보원의 개혁 문제에 집중했더라면 오히려 박수를 받았을 텐데, 마치 작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듯이 잘못된 대응을 하는 바람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꼴’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무분별한 야권 연대가 가져올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결과’를 간과하고 있다. 적어도 민주당이 운동 세력이 아니라 수권 정당임을 자각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닥치고 투쟁’ 노선을 재검토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동북아시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은 산적한 국내 문제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예전 같지가 않고, 그 틈바구니를 일본이 메우려는 듯이 갈수록 우경화 노선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매료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강한 대응을 불러올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외교적으로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언제 어떤 국면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한반도 정세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익과 미래를 그 어느 때보다도 의식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정치권이 국리민복과는 반대 방향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진시키는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특히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종북 세력은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야말로 종북 세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다.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전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사 속에서 모든 주의(主義)나 유파는 하나의 시기를 갖는 데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지나가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 하더라도 국가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히려 국가와 국가 간의 교류가 깊어질수록 국가적·국민적 정체성은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최소한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까지 배출한 종북 세력은 반대로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를 뒤흔들고 있다. 종북주의는 그 역사적 연원이 있다. 이들이 1920년대 식의 ‘좌파 민족주의’에 여전히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들은 낡은 관념에 빠져 북한 체제에 한반도의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가 외세로부터 한민족을 지켜줄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종북 세력을 위해 우리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그 시대착오성과 반(反)국가성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이 이들과 연대를 계속 고집한다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시사교양 전문미디어 - 시선뉴스
www.sisunnews.co.kr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