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지영/디자인 이연선] 요즘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택시운전사>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개봉 후 로튼 토마토지수 93%를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1980년, 우리나라의 역사 속 한 가운데에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라는 외국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독일기자 역이 실존인물 ‘위르겐 힌츠페터’에게서 모티브를 딴 것이라고 알려지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기자라는 꿈을 안고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함부르크 지국의 방송 카메라맨으로 입사한다. 1967년 초에는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았고,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 69년에 사이공에서 부상을 당한다. 이후 1973년에 도쿄 지국으로 옮겨 17년간 이곳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1980년 5월, 목숨을 걸고 광주로 향해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힌츠페터는 당시 상황을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라고 소회했다. 이때 찍었던 필름들을 힌츠페터는 독일 본사로 보냈고 곧 여러 외국에 보도됐다. 1950년 그 해 9월엔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한다. 한국 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비밀리에 상영됐다.

이때뿐만 아니라 그는 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도 취재를 하던 중 경찰에게 구타당해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이처럼 기자로서 투철한 활동을 했던 힌츠페터는 1995년 은퇴하고 독일 북부의 잘츠부르크에서 거주했다. 그 후에도 그는 광주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둥 꾸준한 활동을 했다. 특히 그가 1980년 광주에서 찍었던 영상은 2003년 KBS1TV ‘일요스페셜’에서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편으로 방송되며 언론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또 그 해 11월에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힌츠페터는 생전에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달라”고 주변에 말했을 정도였다. 특히 2005년,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그는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 일부를 봉투에 담아 5·18 기념재단에 남기기도 했다.

2016년 1월 25일,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에서 별세했고 그의 생전 소원대로 그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이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안치됐다.

<택시운전사>를 만든 장훈 감독은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해도 좋은지, 그의 이름을 영화에 사용해도 좋은지에 대한 허락과 당시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위르겐 힌츠페터는 영화를 만나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목숨을 걸고 5월의 광주를 카메라에 담은 위르겐 힌츠페터.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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