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정선]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 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인조 실록은 인조 2년 발생한 ‘이괄의 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부원수 이괄이 금부도사 고덕률 등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였다. 이에 판의금 김류는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안팎에서 체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변란이 서울에서 일어난다면 장치 어찌 하겠는가… 곧 죽여 없애야 한다.” 말했다. 그리고 역적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정 신하들은 이괄의 아내 예(禮)와 이괄의 아우 주돈을 주벌하였다. 
 
1624년 2월 11일 이괄과 한명련은 모두 용병을 잘하여 마치 무인지경을 밟아오듯 경성에 들어왔고, 도성을 차지한다. 제장(관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싸웠는데 하늘이 도와서 교전하는 풍세가 바뀌었다. 이괄이 드디어 크게 패해서 달아났는데 적정 4백여 급을 베고 3백여 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1일 밤 역적 이괄이 역적 이제와 함께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수구문을 거쳐 도망쳤다. 이괄의 밑에 있던 이수백 기익현 등이 아뢰길 “당초에 귀순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이괄을 베어가지고 오려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상(인조)는 “늦기는 하였으나 공이 없지 않다. 뒤에 논상을 하겠으니 물러가 기다리라”라 하였다.
 
조선 인조, 1642년 이괄과 한명련이 일으킨 이괄의 난. 이괄은 관서 지방에서 평안병사 겸 부원수로 임명되어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던 충신이었다. 하지만 인조실록에 따르면 이괄은 역도의 수장이나 임금의 은혜를 배신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괄의 난’ 이면에는 인조 실록에서는 다루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인조반정 이후 조정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은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에 연념이 없었고, 각 계파들은 상대 계파를 몰아세우기 위해 역모설을 퍼뜨리기까지 했다. 1624년 1월 17일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지닌 문회, 이우, 권진, 정방열 등이 대궐에 나가 이괄과 그의 무리들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했다. 물론 거짓이었다. 이에 인조는 서인 세력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이괄의 아들 이전과 한명련을 불러 국문을 열었다. 인조반정 때부터 자신과 대립한 김류가 꾸민 일이란 것을 알게 된 이괄은 역적으로 몰려 죽느니 임금을 바꾸는 것이 낫겠다 싶어 군대를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괄의 난에 숨겨진 역사의 이면이다. 그러나 인조실록에서는 ‘이괄의 난’을 논공행상에 대한 앙심으로 단정 지었다. 
 
역사란, 이긴 자의 서술이라는 말이 있다. 변방에서 충직하게 충심을 다하던 이괄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역도로 만든 것도 바로 이 기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에는 또 다른 이면들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체제 전복 행위였던 반역을 행한 자는 항상 악인으로 기술되어 왔다. 이런 의문을 품고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책이 있다. 바로 <조선 반역 실록>. 역사의 기록 속 서술의 행간을 살피고,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을 찾아내는 책. 고려의 역적이었던 이성계에서부터 계유정난의 수양대군, 경종의 복수를 위한 이인자의 난까지. <조선 반역 실록>을 통해 조선시대에 벌어진 12개의 반역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직시하고 승자의 기록이 아닌 온전한 역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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