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정선] 지난해 5월, 약 70년 간 용산에 위치해있던 ‘주한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게 됐다. 그 동안 우리와 미국의 동맹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용산 미군기지. 그런데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것이 미군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용산 지역에는 언제부터 어느 나라의 군대가 처음 주둔하기 시작했을까?
 
그 첫 시작은 13세기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은 당시 용산지역을 병참 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세기 임진 왜란 당시에는 평양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 장수 고니시의 병력이 원효로 4가에, 가토 장군의 병력은 청파동 일대에 주둔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본격적으로 외국군이 용산 지역에 머무르기 시작한 것은 1904년 러‧일 전쟁 당시였다. 만주 침공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은 수만 명의 병력이 머무를 수 있는 후방 기지를 용산 지역에 지었다. 당시 한‧일 의정서를 내세워 용산 지역의 부지 300만 평을 헐값에 강제 수용하고,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1945년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은 해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 쓰던 군사 기지는 고스란히 미국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의 일반 명령 제 1호에 따라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이때부터는 미 7사단 병력 1만 5천 명이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 뒤 6.25 전쟁이 3년 동안 이어졌고, 1953년 휴전 이후 미군은 다시 용산 가지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게 용산에 자리를 잡은 미군들은 1975년 주한미군사령부를,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용산에 창설하게 된다. 그렇게 한미연합방위체제의 핵심 지휘부들은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용산 지역에 주둔하게 됐다. 그리고 2015년 말 평택 주한 미군 기지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이사를 결정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16년 용산 기지 부지를 국가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2028년까지 용산 공원 조성 계획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몽고군을 비롯한 일본군, 미군은 용산에 군대를 주둔시키게 됐을까. 그것은 바로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남산을 배경으로 한강을 끼고 있는 용산은 수운과 조운의 요지였기 때문에 군자감과 같은 나라의 중요 창고가 위치해있었다. 또한 운송의 편리함과 더불어 퇴로가 함께 확보되어 있어 전략적으로 굉장히 요충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군대 주둔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8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외국의 군대가 주둔한 용산 지역. 하지만 미군 기지의 이전으로 생기는 넓은 부지는 이제 쾌적한 생태 공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며, 부지 내 남아있는 제국주의, 군사주의의 유물, 유적들을 바탕으로 역사공원으로도 조성될 계획이다. 아직 계획 완성 시기나 부지 환경, 주한 미군 잔류 등에 대한 문제가 논의 중이지만 미군 기지의 일부는 이미 일반인에게도 공개되고 있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용산 지역의 역사. 앞으로 조성될 용산 공원은 이러한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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