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디자인 최지민] 따말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줄임말로 명사들의 명언, 드라마와 영화 속 명대사 등을 통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감성을 심어주는 시선뉴스의 감성 콘텐츠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낸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은 어떨까요? 시선뉴스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 영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 큰 성인이 되서도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디즈니, 픽사 등에서 나온 애니메이션은 어른들이 봐도 좋을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 중 영화 ‘주토피아’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저는 영화 ‘주토피아’에서 주인공 토끼인 주디 홉스보다 사기꾼 여우로 나온 닉 와일드라는 캐릭터에 마음이 동했습니다. 물론 주디 홉스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지만 닉 와일드는 마치 아픈 손가락인양 제가 감추고 싶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끌린 것입니다. 

닉은 어릴 적 ‘여우는 교활하다’는 편견 때문에 상처받은 기억이 있죠. 처음에는 자신은 그러한 여우들과는 다르다며 착한 여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고 ‘여우’라는 이유로 사건의 범인이 자신으로 낙인 찍혀집니다. 결국 닉은 더 이상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대신 사람들의 편견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주토피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좌우명을 세우죠.

“첫째, 절대 남한테 얕잡아 보이지 말자. 둘째, 세상이 여우를 믿지 못할 교활한 짐승으로 본다면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저는 학창시절에 저를 알게 된 사람들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를 알게된 사람들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과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사람들은 ‘늘 주접 떠는 전형적인 AB형, 특이한 사고를 지님’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은 ‘감정기복이 겉으로 잘 드러나고, 자기고집이 있음’ 대략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게 됐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아마 저는 학창시절에도 지금의 ‘감정기복과 자기고집적’인 모습을 분명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보였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많았고 그런 시절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 오히려 자유로운 모습으로 인정받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책임감’에 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시험을 못보면 나만 손해를 봤지만 회사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또한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의 잘못이 ‘나’의 책임으로 되는 일들이 많아졌죠. 

그런 생활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문제를 발생하게 하는 ‘실수’를 줄이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로 인해 다치는 것도, 나 또한 다치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문제’ 앞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덜 하기 위한 나만의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오는 부작용이 바로 ‘감정기복’이었죠. 실수를 막아 좋게 해결이 되면 기분이 좋았고, 그것이 잘못되거나 과정이 석연치 않으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감정기복과 자기고집이라는 평가가 이기적인 모습을 돌려 말하는 부정적인 평가라고 생각해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력했던 방법은 ‘참는 것’ 이었죠. 왠만 하면 남의 의견에 동조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써 웃어보이고 ‘그래 그래’ 하다보니 결국 또 문제가 터지고 속이 터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죠. ‘감정기복과 자기고집을 보이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걸까. 때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느낀 것은 일을 할 때 적당한 ‘자기고집’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저는 제 고집이 없었으면 글 쓰는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전하고자 싶은 말이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잘해내기 위한 나만의 고집이 있었기에 지금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정기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써 기분이 나쁘다, 어떻다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눈빛으로 말하는 ‘이건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것이, 의견의 동조를 구하는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 침묵’으로써 반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때론 강력한 답변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표현하기에도 적합했죠.

그렇게 따라온 부작용은 역시 전 일 앞에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하하하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서로의 차이를 더 포용하게 될 거예요”

아마 누군가는 제 행동이 굉장히 불편하고 언짢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 행동을 불편하게 느낀다면 아마 그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과 저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저의 행동을 보며 기분을 드러내는 것이 생각이 없어 보일 수 있고 어려보일 수도 있고 수를 읽혀 불리해 보일 수도 있겠죠. 다만 상대방이 나의 다른 점을 불편해하듯 우리는 각자 타인에 대한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여러분에게 영화 ‘주토피아’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 하늘같은 마음이 되어 보는 날!

“첫째, 절대 남한테 얕잡아 보이지 말자. 둘째, 세상이 여우를 믿지 못할 교활한 짐승으로 본다면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서로의 차이를 더 포용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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