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최지민pro]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 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뉴스에선 사건 사고 소식들이 종종 들려오곤 한다. 한 70대 남성이 서울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 큰 부상을 입었고, 이 사고로 전동자 운행이 지연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자살 기도를 한 것이었다. 누구든 한 번쯤은 접해볼 법한 그런 사건 사고. 하지만 이런 기사를 두고 “죽으려면 곱게 죽지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죽음,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순간을 뜻하는 명사다. 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든 죽는다는 것은 절대 진리다. 그렇기에 혹자는 사람의 삶이란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우리는 내 곁에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곧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그리 생각하지 않을 뿐.

그래서일까.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한다. 시험을 앞둔 학생의 입에선 다 귀찮으니 평생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말이, 일에 치여 지친 직장인에 입에서는 콱 죽어버리면 다 편해질까 하는 한탄이 세어 나온다. 더 심한 경우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죽어도 싸다”며 그 죽음의 당위를 결정짓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혹은 내가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웃고 떠들던 가족이 혹은 애인이, 내 눈 앞에서 심장이 멎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거나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거리를 걷던 내가 잠시나마 이 세상과 이별을 했었다는 경험. 이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단순히 조음기관을 거쳐나간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엔 이러한 의미와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도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이들. 바로 ‘의사’다. <만약은 없다>의 저자이자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은 매일 같이 죽음을 목도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환자를 붙잡아 두는 일을 하고,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무게를 매일 같이 짊어지며 하루를 버틴다. 

그에게 죽음을 앞둔 사람은 그저 살려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지위에 있었든, 어떤 사연으로 여기 왔든, 얼마나 돈이 많든 모두가 다르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려내야겠다는 그의 필사적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난 글에는 비장함을 넘어 처절함까지 느껴진다. 

작가는 그 수없이 겪은 죽음 속에서 작가는 ‘삶’의 의미를 건져낸다.  우리가 스스럼없이 입에 올린 그 죽음 속엔 어느 누구도 가볍다 말하지 못할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만약은 없다>에서 펼쳐지는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묘사는 당신에게 이 일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누구든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도달하는 상황. 이 때 우리는 우리네 삶에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늦다. 그 전에 <만약은 없다>를 통해 당신의 삶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