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디자인 이정선 PRO]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궁궐보다 사건 현장이 더 좋은 왕 예종과 무엇이든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 신입사관 이서가 한양을 뒤흔든 괴소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실학과 논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과학수사를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과학 수사가 조선 시대에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 종류는 사건 속 단서를 찾기 위한 잠행부터 시체 검안까지 다양했는데, 과연 조선시대에서 과학수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을까?

조선시대에 사용된 대표적인 수사집은 ‘증수무원록’과 ‘신주무원록’이다. 이 책은 중국 원나라 왕여가 1308년에 저술한 ‘무원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실정에 맞게 세종 20년(1438년)에 신주무원록을, 정조 20년(1796년)에 증수무원록을 발행했다.

증수무원록언해에 기록된 구절을 살펴보면 “살인한 칼이 오래 돼 핏자국이 남아 있지 않거든 강한 식초를 뿌려라 자국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이라는 문구가 있다. 

현대 화학으로 해석하면 핏 속에는 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이것이 식초와 만나면 굳어서 뿌옇게 변한다. 현대에는 ‘루미놀’이란 약품으로 채 한 방울이 안 되는 혈흔도 잡아내지만 조선시대에는 산과 단백질의 반응을 이용해 칼에 지워진 핏자국을 검사했다. 

“시체가 놓여있던 땅을 잘 치운 뒤 역시 강한 식초를 뿌려 보라. 혈흔을 곧 찾아낼 것이다” 칼뿐만이 아니라 시체를 불에 태워 버린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썼다.

두 번째 독살 확인을 위한 은비녀, 그리고 달걀흰자와 밥이다. 조선시대에 독약으로 많이 쓴 ‘비상’은 비소와 황의 화합물인데 비상을 먹고 죽은 사람에 목에 은비녀를 넣으면 황과 은이 결합해 비녀가 검게 변한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달걀흰자와 밥을 섞어 입안에 넣고 시체의 입을 종이로 막은 뒤, 술지게미로 시체를 덮고 뜨겁게 하여 독기를 확인했다. 이는 수은에 의한 독살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수은은 달걀흰자의 단백질을 변화시키는 성질이 있다.

세 번 째로 반계법이 있다. 반계법은 시신의 목구멍 속에 백반을 한 덩이 넣어 한지로 덮어 두었다가 얼마가 지난 후에 백반을 꺼내서 닭에게 먹여서, 닭이 죽으면 독살이라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목에 남아 있는 독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네 번째 시체를 검안하던 ‘법물’. 조선시대는 유교사상이 주요했기 때문에 부검 등 시체를 훼손하는 방법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시체를 검안하는 검시용 시약인 법물을 사용했는데 소금, 백반, 숯, 감초, 파 밑동, 초지게미(식초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등을 사용했다. 

지게미, 초, 파, 매실과육 등은 사체의 상흔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고 창출, 조각은 시체가 놓인 곳의 악취를 제거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멍이 든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선 대파의 흰 부분으로 흔적 부위를 감싸고 초지게미로 덮어 두었다가 물로 씻어내면 멍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매우 기초적인 과학수준을 보유했던 조선시대였지만 여러 경험 등으로 쌓인 지식은 나름대로의 과학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원통함(억울함)이 없게 하라는 무원록의 의미처럼 억울한 죽음과 누명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 것은 비단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 이어져야 할 정신이 아닐까.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