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고종은 을사조약이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체결한 조약이기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를 다른 나라에 알려 도움을 요청하는 작전인 ‘헤이그 특사’ 파견을 진행했다. 

헤이그 특사 파견은 해외에 조선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알리는 부분의 성과는 이루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를 한 작전이 되었고 일본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선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했다. 

이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일본은 고종을 퇴위시키고 그 자리에 아직 13세 밖에 되지 않은 숙종을 앉혀 허수아비로 만들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고종은 일본의 이런 요구를 식사도 하지 않으며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을사오적 등의 친일파 대신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협박에 합류해 고종을 압박하여 고종은 어쩔 수 없이 황태자(순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겠다는 선에서 합의를 보려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고종이 다시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 시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황태자인 순종을 황제로 등극시켜 버린다. 

일본은 황제가 황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양위식을 내시들에게 쓰게 하여 형식을 갖추고 식을 거행했는데 정작 왕위를 물려주는 고종은 이에 참석하지 않았다(1907). 이로 인해 조선의 26번째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왕이었던 고종은 물러나게 되었고 순종이 대한제국의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왕위를 빼앗긴 고종은 태황제가 되어 덕수궁(경운궁)에서 살게 되었고 순종은 일본의 명령을 무조건 들을 수밖에 없는 허수아비 황제가 되어 대한제국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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