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 

우리나라의 여류화가로 ‘신사임당’이 있듯이 서양 회화사에도 빼놓을 수 없는 여류 화가가 있습니다. 일흔 살의 나이가 이르러서도 그림의 열정이 가득했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평범한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교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녀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죠.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출처/위키미디아)

그녀는 브라크와 피카소와 함께 어울리며 아폴리네르와 살몽 등 시인들과도 알게 되면서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화풍 속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소녀적인 감성을 표현합니다. 또한 가볍고 화사한 파스텔 톤의 색조가 주를 이루면서 보기에 편안하고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그녀는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심미관에 대해 “내게 있어 아름답게 단장한 여인은 그 자체로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나는 미인의 얼굴과 손, 발처럼 아름다운 것들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내가 그린 초상화가 남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그림 속 사랑 이야기는 나의 것이면서 다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라고 말했죠. 즉 여성은 그녀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 앞에 샤넬이 나타납니다. 로랑생과 샤넬은 ‘푸른 기차’라는 회사에서 의상디자인 일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데요. 사생아 출신이던 로랑생과 어린시절 수녀원에서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샤넬은 동갑의 나이와 비슷한 경험으로 공감대를 쌓게 됩니다. 로랑생이 무대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 샤넬은 그녀에게 자신의 초상화 제작을 주문합니다. 로랑생은 샤넬의 의상이 일반인에게 소개된 해이기도 한 1923년에 이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녀의 주문을 받아 완성된 그림 코코샤넬의 초상화 (Portrait of Mademoisells Chanel, 1923)입니다.

코코샤넬의 초상화 (Portrait of Mademoisells Chanel, 1923) (출처/위키아트)

로랑생이 그린 샤넬의 모습은 어두운 색채를 사용했음에도 침울하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 깊은 눈망울, 무릎에 다소곳이 앉은 얌전한 강아지까지... 한쪽 어깨를 관능적으로 드러낸 모습은 마치 샤넬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와 대조되는 나른한 듯 피곤한 표정은 그녀의 지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주목받는 ‘뮤즈’의 삶이란 화려하면서도 이면에는 고독함을 담고 있다는 그녀만의 메시지가 느껴지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당시의 세태를 생각하면 로랑생은 그녀의 내면를 세계 캐치해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로랑생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인 부드럽고, 유동적인 선, 흐릿한 색채와 나른한 분위기가 돋보입니다.

여류 화가가 흔치 않았던 시대 속에서도 남성 화가들과는 다른 당당하고 독특한 그림세계로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내면세계를 표현해 낸 화가인 로랑생. 그녀는 그림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조예를 보였는데요. ‘잊혀진 여인’이란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죠.

그녀가 시인 아폴리네르와 5년간 사랑을 나눴던 것도 이러한 예술적 감수정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여성이었기에 여성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욱 표현했던 그녀. 오늘은 왠지 그녀와 같은 감수성에 푹 빠져보고 싶은 날입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