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3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국제에 인정받은 을사조약 [키워드 한국사]
EP.133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국제에 인정받은 을사조약 [키워드 한국사]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7.06.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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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고 8월 22일에는 제1차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재정과 외교의 실권을 빼앗았다. 

게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은 대한제국을 삼켜야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열강의 간섭이 우선 없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일본은  1905년 7월 27일 미국과 태프트·가쓰라밀약을 체결하였고 8월 12일 영국과 제2차영일동맹을 체결하여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하든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한 러일전쟁을 승리로 끝낸 후인 9월 5일, 미국의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맺어 어떤 방법으로든 대한제국의 동의만 얻으면 주권을 침해 할 수 있다는 권리를 얻어냈다. 대한제국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는 열강과 일본의 태도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일본은 1905년 10월 외무대신인 고무라와 총리대신 가쓰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등이 보호조약 체결을 모의하고 11월 추밀원장(樞密院長) 이토 히로부미를 고종 위문 특파대사 자격으로 한국에 파견하여 한일협약안을 한국정부에 제출한다. 

11월 10일 이토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자신의 지휘를 받으라는 일본 왕의 친서를 건내며 협박했다. 이어 15일에도 고종을 다시 만나 한일협약안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는 대한제국의 주권을 모두 일본에 양도한다는 내용이었기에 조정은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측은 일본군을 동원해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고 다시 어전회의를 열어 대신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약체결에 관한 찬성 여부를 물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대신은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등이었는데 이 중 한규설과 민영기는 조약체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이날 밤 이토히로부미는 대신들을 다시 불러 회의를 열고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5명의 찬성을 받아 조약을 체결했다. 이 다섯명의 대신을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칭한다. 그리고 한규설 외의 나머지 대신들도 후에 친일파로서 친일행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을사오적의 협조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제국 및 일본국정부는 양제국을 결합하는 이해공통의 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한국의 부강의 실(實)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이를 위하여 이 조관(條款)을 약정한다.

제1조, 일본국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監理),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의 신민(臣民) 및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정부는 금후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상약한다.

제3조, 일본국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폐하의 궐하에 1명의 통감(統監)을 두게 하며,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성(서울)에 주재하고 한국 황제폐하를 친히 내알(內謁)할 권리를 가진다.

일본국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 및 일본국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 이사관(理事官)을 둘 권리를 가지며,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에 종래 재한국일본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장리(掌理)한다.

제4조, 일본국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제5조,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

이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완전히 박탈당하여 외국에 있던 대한제국의 외교기관이 모두 폐지되었고 대한제국 내에 있었던 미국, 영국, 독일, 벨기에, 청국 등 열강들의 주한공사들은 본국으로 철수했다. 

또한 다음 해인 1906년 2월에는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어 조약 체결의 일등 공신인 이토히로부미가 초대통감으로 취임하여 외교는 물론 대한제국의 내정에 명령을 내리고 집행하게 하는 권한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인정받을 수 있고 대한제국의 존치는 바람 앞에 촛불 같이 위태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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