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정선 pro]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 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니?” 어떤 일에 크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밥값’, 결국 투입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인간적 가치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학생은 성적으로, 직장인은 성과로. 그리고 지금의 사회는 그것을 잘할수록 인정받는 사회다. 성적이 높고, 성과가 높을수록 밥값을 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흔히 우리는 학생과 직장인을 공부벌레, 일벌레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공부벌레, 일벌레가 공부와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발생한다. 그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의 삶을 ‘버러지’ 같은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열심히 살 때도 벌레였지만, 쓸모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벌레 취급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정녕 투입한 만큼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input과 output이 같아야 한다는 공식은 ‘기계’에 적용되는 공식이다. 넣은 기름만큼 운행하는 자동차, 넣은 원료만큼 물질을 만드는 기계들 말이다. 효율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에게마저 기계의 원리를 적용한다. 하지만 과연 인간에 대한 가치를 투입과 그에 대한 결과로만 말할 수 있을까. 효도, 사랑, 우정, 신뢰, 믿음 등의 영역은 밥값의 영역에 포함될 수는 없는 것일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우리에게 이러한 의문을 던진다. 눈을 뜨고 나니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그리고 벌레가 되어버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과 지인들. 벌레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주인공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카프카의 생생한 묘사와 서술은 우리에게 인간의 실존과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 의문의 끝에 남은 질문 하나. ‘우리 사회가 말하는 쓸모는 과연 무엇일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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