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진국은 우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국가의 부(富)가 대단히 높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물질적 수준만으로 선진국 운운할 수가 없음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국가의 품격과 국민의 정신이 거기에 상응해야겠지요. 아무튼 중진국의 윗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된 대한민국으로서는 선진국을 목표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오늘은 우리 국민의 ‘빨리빨리’ 습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빨리빨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인의 특성임이 분명합니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이 나와 있겠습니까? 이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자판기 컵이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라는 게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몸소 실천하는 습관입니다. 나머지 아홉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조급증이 체화되어 있다고 할까요?

   매일 지하철을 탈 때마다 목격하게 되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위험천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지하철이 불과 몇 분 후에 도착할 예정인데도 말입니다. 출근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자동차 운전 습관은 또 어떤가요? 보행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통사고 세계 상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이대로 선진국이 가능할까요? 온라인상에서도 우리는 순간의 지연조차 참을 수 없을 만큼 ‘속도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모습
요컨대 ‘빨리빨리’는 한국의 문화나 다름없습니다. ‘빨리빨리’ 덕분에 짧은 기간 안에 산업화에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민주화와 지식정보화에도 비교적 잘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빨리빨리’는 당연히 역기능을 낳을 수밖에 없지요. 1990년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등 선진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을 연이어 경험하면서 우리들 스스로 이를 실감할 수 있었지요. 그럼에도 관성의 법칙 때문인지 ‘빨리빨리’는 여전히 한국인의 습속처럼 남아 있습니다.

   혹자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 ‘빨리빨리’는 앞으로도 필요한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동적인 시대에 순조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앞날을 예견하고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성찰성이 중요하고, ‘빨리빨리’는 성찰성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이른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속도보다는 독창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도 ‘빨리빨리’는 그렇게 권장할 만한 덕목이 아닌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꿈꾸는 ‘삶의 질’ 혹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더 더욱 ‘슬로우’의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구에서 뛰어난 투수는 강속구만으로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변화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뛰어난 투수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같은 이치입니다. 인류 역사도 일직선으로 가는 것 같지만, 다양한 굴곡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우여곡절 혹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게 아닐까요? 사회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특정 방향으로의 역사를 ‘기획’했기 때문이고, 자본주의가 그 모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은 그 개방성과 역동성 때문이겠지요.
   『슬로우』의 저자 플로라안 오피츠(Florian Opitz)는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속도의 최대치가 얼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삶에 어울리는 속도,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속도가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바람직한 삶에 어울리는 속도’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우리들이 처한 생활환경이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느림의 미학’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선현들의 지혜가 너무나 그리운 요즘입니다.

  

 
오래 전에 어딘가에서 접한 ‘3초의 여유’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분초를 다투는 강박관념에 빠져 최소한의 여유조차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봄꽃이 만개한 계절입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새로운 생명을 선사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의 위대함은 비약이 아닌 순리에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정서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 자신부터 달라진다면 일종의 ‘눈사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슬로우’에 대한 자각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한 질주가 능사일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해방 후의 60여 년이 ‘질주’의 세월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더딘 것 같지만 올바른 길인 ‘우보(牛步)’의 나날들이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寓話)를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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