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처럼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경받고 칭송 받는 것은 어느 분야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술에서도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뛰어난 작품으로 후대에 이름을 알린 화가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화가로 소년 시절에 살던 도시 이름을 따 ‘카라바조’라 불린 그는 건축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 때 죽음을 맞이했고, 어머니 또한 카라바조가 젊은 나일 때 돌아가셨죠. 

(출처/위키피디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제멋대로인 성격, 선술집에서의 폭음과 격렬한 싸움, 그리고 많은 빚과 음침한 친구들, 반복된 투옥, 살인 혐의, 수년간의 도주생활, 때 이른 죽음 등 험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도 그의 재능을 다 가릴 순 없었습니다. 그는 도시 빈민가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성서 속 인물들을 그렸는데요. 초기에는 종교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전통적인 회화의 격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그가 그린 회화 양식을 보면 부분적으로 서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모습이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참신하고 강력하며 대담한 자연주의로 채워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고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생겨났죠.

그렇다면 카라바조의 대표작품인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Boy with a Basket of Fruit, 1594-96)>를 살펴볼까요?

(출처/위키피디아)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Boy with a Basket of Fruit, 1594-96)>

소년의 얼굴과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과일 바구니가 같은 비중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초상화 이자 정물화입니다. 화가의 친구 마리오 민티니를 모델로 그린 소년은 자세나 표정이 흡사 소녀 같습니다.

카라바조는 ‘사그라드는 생명의 불꽃’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요. 다양한 색채로 표현된 이 작품 속 아름다운 청춘을 간직한 주인공 얼굴에서 ‘시간’ 과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곱슬머리를 가진 소년의 두 눈에 서려 있는 애수도 그렇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와 상징은 그의 품에 있는 과일에 있습니다. 바구니가 넘칠 만큼 풍성한 과일은 관능적인 특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구니 중간 속 복숭아를 보면 싱그러운 붉은 빛을 잃어가고 포도송이의 광택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익을 대로 익은 과일은 이제 서서히 부패를 향해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죠. 나뭇잎 역시 누렇게 뜨기 시작하고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보이며 생명력을 잃고 서서히 말라갑니다. 싱싱한 과일 사이로 보이는 시들어가는 잎과 과일들을 통해 세상 만물은 누구나 죽음의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현실적인 묘사를 즐겼던 카라바조는 작품을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늘 가난에 허덕이고 여러 작업실을 전전하며 일감을 찾아다닌 카라바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이 그의 후원자가 되어주면서 그의 그림 인생은 꽃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저지른 살인 때문에 죽기 전까지 늘 은둔 속에서 몸을 숨기고 결국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때문인지 그가 남긴 그림에선 왠지 모를 아픔이 느껴집니다.

불우한 환경을 살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추종자를 만든, 재능만큼은 인정받은 카라바조의 그림, 오늘 카라바조의 그림을 함께 보면서 그의 아픔을 나눠보는 시간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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