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서민의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서민들의 위상이 그 이전보다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전쟁으로 인해 몰락하는 양반들의 수가 늘었으며 반대로 농사 기술의 발달이나 상업의 발달로 인해 부를 축적한 서민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조정은 양란으로 인해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가 없었다. 때문에 궁핍해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돈을 받고 관리직을 팔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천민을 양민으로 만드는 면천첩을 발행해 세금을 납부하는 양민의 수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양반 사회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되었고 서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신분이 절대적이지 않고 바뀔 수 있는 것이란 의식이 점점 커져갔다. 또한 이런 의식의 향상은 양반들이 누리던 문화생활 역시 양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여유가 생긴 서민층에서는 단순히 먹고 사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즐기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독서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서민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했을 뿐 어려운 한자와 학문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하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이 보급되면서 서민들에게도 독서의 기회가 생겼고 홍길동전, 춘향전처럼 탐관오리를 물리치는 내용의 소설이 발간되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통쾌한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원래 귀신을 쫓거나 신에게 무언가를 빌 때 사용하던 탈놀이에 양반을 비롯한 조정의 잘못이나 비리를 비웃는 내용을 첨가한 탈춤이 유행하였다. 서민들은 요즘말로 사이다 같은 광대의 날선 시회 비판과 풍자를 보며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대한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조선후기에는 서민들의 경제력 성장, 한글 보급으로 인한 지식수준의 향상, 그리고 국가 체제의 불안정성에 의해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화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즐길 수 있게 된 문화는 서민들의 시민의식의 고취를 가져왔고 이를 통해 폐쇄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조선의 양반중심의 사회가 붕괴되는 결과를 조금씩 초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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