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지영 / 디자인 이연선 pro]

▶ 테리 폭스 (Terry Fox, Terrance Stanley Fox)
▶ 출생-사망 / 1958년 7월 28일 – 1981년 6월 28일
▶ 국적 / 캐나다
▶ 활동분야 / 운동선수, 암 연구 활동가
▶ 수상 / 오더 오브 캐나다 1980년 Lou Marsh Trophy

캐나다의 운동선수이자 인도주의자, 암 연구 활동가. 수술로 절단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암 연구를 위한 자선 마라톤을 하였다.

-헌신적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테리 폭스
테리 폭스는 1958년 7월 28일 매니토바 주 위니펙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롤리 폭스(Rolly Fox), 어머니는 베티 폭스(Betty Fox)로 아버지는 캐나다 내셔널 철도에서 철도원으로 일하였다.

폭스의 부모는 가정을 꾸리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특히 폭스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통해 끈끈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였고, 이는 폭스가 자신이 헌신한 일에 관해서는 완강한 전념을 발달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폭스는 지기 싫어하며 어떤 일에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성격이 있어 경쟁심이 대단히 강한 아이였다.

- 운동을 사랑한, 체육교사를 꿈꿨던 테리 폭스
폭스는 학창시절 내내 계속해서 장거리 주자, 농구 선수로 활약하였다. 특히 포트 코퀴틀럼(1986년 Terry Fox Secondary School로 이름 변경)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본래 농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노력 끝에 10학년 때는 주전선수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12학년 때는 그의 고등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로 뽑히게 됐고, 포트 코퀴틀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로 진학하며 그는 신체 운동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그렇게 체육교사의 꿈을 키워 나갔다.

-갑작스런 암 투병, 암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
1977년, 만 18세였던 폭스는 골육종을 진단받게 된다. 골육종은 뼈에 발생하는 암으로 왕성한 10대 성장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특히 남자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병이다. 오른쪽 무릎 뼈에 암이 생긴 그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됐지만, 16개월의 끊임없는 항암치료와 재활훈련을 한 후 폭스는 의족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테리 폭스는 의족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기를 했고 휠체어 농구선수로도 활약하며 벤쿠버에서 열린 국가 경기에서 세 번이나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한 쪽 다리를 잃고 절망할 법도 하였지만 폭스는 절망에만 빠져있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다른 암환자들을 지켜보며 암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희망의 마라톤을 시작하다
1980년 테리 폭스는 자선 목적으로 스스로 캐나다 전국을 횡단하는 희망의 마라톤(Marathon of Hope)을 계획하였다. 이는 캐나다의 동쪽 끝 대서양 연안 뉴펀드랜드 주의 세인트 존스에서부터 매일 공식 마라톤 완주거리를 달려 서쪽 끝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태평양 연안 빅토리아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기금을 모아 항암연구에 보태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의 목표액은 2,400만 캐나다 달러였다. 이는 당시 2,400만 캐나다 국민이 1 캐나다 달러씩 기부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액으로 그는 캐나다 국민 모두가 암에 대한 관심을 갖고 1 캐나다 달러씩 기부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폭스는 그 해 4월에 세인트존스에서 조그마한 응원으로 시작하여, 매일 공식 마라톤 정도의 거리를 달렸다. 온타리오 주에 도착했을 때 폭스는 캐나다의 국민 스타가 되었고, 여러 사업가, 운동선수, 정치인도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끝내 이어지지 못한 희망의 마라톤
하지만 테리 폭스는 1980년 9월, 온타리오 주 선더베이 외곽에서 마라톤을 중단하여야 했다. 기침으로 숨이 가빠져 쓰러졌던 폭스는 암이 폐까지 전이 되어 폐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치료를 위해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로 돌아온 그는 캐나다에서 가장 젊은 나이로 국민훈장 최고등급(컴패니언)을 받았고 각종 언론으로부터 ‘올해의 캐나다인’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희망의 마라톤은 143일간 이어졌다. 그는 의족을 착용하고 5,373km를 달렸다. 캐나다 국민들은 그의 열정과 노력에 호응하였고 이는 그의 목표액이었던 2,400만 캐나다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모금하게 되었다. 하지만 끝내 다시 마라톤을 뛰지 못한 그는 1981년 6월 28일,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테리 폭스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테리폭스 재단이 설립 되었고 암 치료 연구를 위한 후원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계 60여개국에서 테리폭스 마라톤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그가 보여준 143일간의 행보는 모든 사람에게 아직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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