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한성현] 최근 정부의 반감을 산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을 축소하거나 우수 저작 선정 사업시 의도적으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작성을 지시하였다는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되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법무부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엄청난 커리어를 갖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 정부에 이르러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기춘 전 실장은 어떤 사람일까?

경상남도거제 출신인 김기춘은 대학교3학년때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광주지검을 시작으로 청와대비서관법무부검찰국장, 중앙정보부대공수사부장, 중앙지검공안부장 등을거쳐 대구고검에 고등검사장을지내는 등 법률가로서 승승장구한다.

그는 특히 1974년 8월 15일에 일어난 육영수 저격 사건 담당 검사로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문세광을 하루 만에 설득하여 범행 과정 일체를 자백 받아 기소하는 등 수사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신 정권의 근간인 유신헌법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 외에도 김기춘은 여러 논란을 통해 그의 이름을 세간에 알렸다.

1975년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있던 김기춘이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다.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은 '북괴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모국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대학에 침투, 이른바 통일혁명당 지도부를 학원 안에 구성했다'고 발표하며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 등에 재학 중이던 16명의 학생을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이는 당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소리를 잠재우려는 목적이었는데 이 사건에 연루 되었던 21명 중 2016년 현재까지 재심 신청자 12명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이 사건이 ‘없는 간첩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원복집 사건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의 ‘초원복국’에서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자는 비밀회동을 연 사건이다.

당시 이런 행위는 엄연한 선거법 위반이었지만 김기춘은 이 사건에 적용된 대통령선거법 제36조 1항(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고, 이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려 기소가 소멸되었다.

이 법을 통해 과거 유신시대에 많은 정치가들이 압박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위반한 것이 적발되자 아예 법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 후 김기춘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2004)을 맡았으며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2012)에서 뒤로 힘을 썼다는 의혹을 받았고 2015년에는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조사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김기춘 전 실장에게 돈을 건냈다는 전화 인터뷰를 했지만 곧 자살하였고 김기춘 전 실장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받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에 이르러 문화 예술계 인사와 단체의 탄압을 수차례 직접 종용했고,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독재체제를 구축한 유신헌법을 만들고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최근까지 대통령 전 비서실장을 수행할 정도로 엄청난 위치에 있었던 김기춘. 78세의 고령인 그가 과연 아름다운 황혼을 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