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디자인 이정선 pro] “돈의 시대, 돈질이 곧 갑질이 되는 그런 시대. 세상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니...”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흘러나온 내레이션 중 하나다. 내레이션처럼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돈’으로 나뉜, 보이지 않은 계급 사회를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교도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죄수들의 은어로 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들을 ‘범털’이라 한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 실질 검사를 받기 위해 밤을 새고 15시간 만에 나온 서울 구치소는 거물급 미결수가 모이는 시설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을 ‘범털 집합소’라고 부른다.

 

‘범털’외에도 죄수들을 뜻하는 은어들이 많다. 범털의 반대말로 돈이나 뒷줄이 없는 일반 재소자를 ‘개털’이라고 한다. 개털은 때론 법자(법무부의 자식)이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범털이 있는 방을 ‘범털방’이라 하고, 개털방 대신 살인범이나 강도범 등 흉악범을 가둔 방을 ‘쥐털방’이라고 한다. ‘깃털’도 자주 쓰인다. 깃털은 어떤 사건이나 주범이 아닌 종범(從犯)이라는 의미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 핵심 인물인 몸통의 존재를 아는 관련자들을 뜻한다.

이는 감옥에서 조차 또다른 계급을 만든다. 감옥에서는 기본 물품이 부족하다 보니 가족이나 친지들이 넣어주는 영치금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치금이 풍부해 넉넉한 수감 생활을 하는 범털들은 죄를 짓고 반성해야 하는 곳인 감옥에서 조차 여유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번 매스컴을 통해서 문제 제기가 돼 왔다. 일단 범털들은 구치소에 도착하면 수의와 속옷 등 기본적인 물품을 받고 대부분 독거실을 배정 받는다. 독거실은 6.56㎡(약 1.9평) 규모이며 접이식 매트리스와 관물대, TV, 1인용 책상 겸 밥상, 세면대, 화장실 등이 구비돼 있다.

수감자들은 ‘기상→식사→출정(검찰 조사, 재판 참석)→휴식’이라는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는데, 출정을 나가지 않는 경우에는 운동이나 외부인 접견, 변호사 접견이 가능하다. 변호사 접견은 하루 한 번만 가능하지만 시간제한이 없어 범털들은 이 시간을 요긴하게 사용한다.

변호사 접견은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교도관의 배석 없이 변호사와 둘만의 대화가 가능하고 접견 내용도 기록되지 않는다. 변호사를 통해 향후 검찰 수사 대응 방안은 물론 회사 업무를 지시 혹은 결재하거나 정·재계 소식, 최근 업계 동향, 국민 여론 등을 전해 듣기도 한다. 때로는 변호사를 말동무 삼아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에 신청하면 이뤄지는 장소변경 접견은 최대 5명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며 15분 동안 이뤄진다. 접견실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구비돼 있고, 접견을 하면서 악수나 포옹도 가능하다. 구치소 안에서 판매하는 빵, 우유, 떡갈비, 훈제닭갈비, 바나나, 오렌지, 각종 스낵류 등 음식들을 사먹을 수도 있다. 범털들이 답답함을 벗어나고자 종종 쓰는 방법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권은 ‘특별 사면’이다. 일반 재소자들은 한 번 받기 어려운 특별 사면을 범털의 경우 여러 번 받기도 한다. 최태원 회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에 이어 2015년에 다시 특별사면을 받았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두 번에 걸쳐 특별사면을 받았다.

대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보면 저울과 함께 법전을 들고 있다. 다른 나라의 여신상들 중에는 눈을 가리고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 여신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란 곧 법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연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죄를 짓고 반성을 해야 하는 곳에서 조차도 돈이 권력이 되고 보이지 않는 계급이 되어 정의 실현이 어려운 현실을 사는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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