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지난해 10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50대 한국인 사업가 지모 씨가 마약 관련 혐의를 핑계로 한국인 사업가를 경찰청 본부로 끌고가 목을 졸라 살해한 뒤 가족들에게서 500만 페소(1억2천여만 원)의 몸값을 뜯어낸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1월 20일, 필리핀 검찰은 지 씨의 살인행위에 대한 주범으로 신원이 특정된 I씨와 V씨 등 ‘현직 경찰관’ 2명과 납치에 가담한 렌터카 업체 사장 Y씨 등 총 3명(전원 필리핀 국민)을 체포해 경찰청 유치장에 구금했다고 밝혔으며 아직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공범 피의자 4명과 함께 납치와 살인 혐의로 기소하여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하고 있다.

▲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출처/위키피디아)

이처럼 납치 살인사건이 경찰에 의해 경찰 청사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여론은 로널드 델라로사 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고 델라로사 청장은 지난 21일,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이런 의사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거부해 버렸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2일 경찰본부 캠프 크라메에서 열린 델라로사 청장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델라로사는 경찰청장직에 머무를 것", "나는 델라로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며 "그를 끌어낸다면 우리 역시 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하며 델라로사 청장을 유임한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델라로사 청장에 대해 이런 신뢰를 보인 것은 두 사람이 두테르테 대통령이 다바오시 시장으로 일하던 당시 다바오시 경찰청장을 지낸 인연과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비 없는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이런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꺾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필리핀에서 마약을 척결하는 것이 가장 큰 지상과제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정의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경찰 자체가 썩어 있으면 마약을 청소시킨 후에는 비대한 권력을 가진 비리 경찰이 남게 된다.

보통 생계형 비리 경찰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푼돈을 뜯거나 뇌물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한인 살인사건의 경우는 필리핀 경찰의 조직적인 범행으로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줬다.

카리스마를 뿜으며 마약상들을 소탕시킨 두테르테. 하지만 이번 델라로사 경찰청장을 유임시킨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는 자국 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자신이 꿈꾸는 법치국가의 한계를 보여줬다.

현 상황으로만 간다면, 두테르테 대통령의 법치국가는 사상누각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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