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 고대 동굴벽화의 가치는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생활상이나 문화를 알 수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림은 작가의 사상이나 이념을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당시 생활상을 그려 후대에 알리는 역할도 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대표 민속화가 김홍도나 신윤복 등이 유명한 이유도 당시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을 재치있게 그린 것이 가치롭게 평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도 우리나라의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농민 브뢰헬’이라 불리는 피테르 브뢰헬입니다. 브뢰헬은 이탈리아 양식을 택하지 않은 몇 안 되는 화가 중 한명으로 고전주의나 매너리즘, 바로크 범주에 있는 회화보다 16세기 유럽의 생활상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브뢰헬도 처음부터 생활상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는 주류 예술계의 보편적 흐름처럼 성서 속 이야기와 고대 신화를 묘사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농부의 결혼식’ (Peasant Wedding, 1568년)’ ‘농부의 춤(The Peasant Dance, 1568)’처럼 소박한 농민들의 삶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 (출처/위키미디아)

브뢰헬 그림의 특징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세부적인 것에 대한 정밀함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흔히 말하는 ‘디테일이 살아있다’라고 느껴집니다.

그림 ‘농부의 결혼식’을 볼까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상황을 한 화면에 묘사하고 있지만 전혀 복잡함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결혼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건물 내부를 살펴볼까요? 건물에는 천정까지 건초가 가득 쌓여있고, 오른쪽 벽에 전통에 따라 마지막 한 다발의 밀짚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 밀짚 더미의 황금색이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데, 흰색의 머릿수건, 앞치마, 바지 등에 세심하게 배치되어 색채 간의 어울림이 한층 돋보입니다.

길고 소박한 식탁에 손님들이 둘러 앉아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먹고 마시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잔치가 막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죠. 화면 중앙으로부터 살짝 오른쪽에서 통통한 신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요. 그녀의 손은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포개어 있으며, 머리 위에 화관을 얹고 있는데 그녀의 뒷벽에 결린 짙은 녹색 휘장으로 강조되어 마치 왕관처럼 보입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인 것을 나타내죠.

신부의 옆에 있는 나이든 부인과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은 아마도 그녀의 부모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신랑은 어디 있을까요? 신부는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신랑은 누구인지, 혹은 정말 이 그림에 신랑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습니다.

▲ (출처/위키미디아) 남편 후보들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한데요. 화면 오른쪽 전경에서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오는 남자나 술을 따르고 있는 청년이 신랑이다, 또는 그림의 중앙에 있는 어두운 코트를 입고 술을 더 달라는 듯한 포즈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신부의 오른쪽 편으로 멀리 벽에 자리한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까만 모자를 쓴 남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대적인 정의에서는, 신랑이 테이블에 장착되지 않고 맥주를 붓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제안 하고 있습니다.

한편, 식탁 한 구석에는 수도사와 촌장이 앉아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촌장의 용모가 브뢰헬의 초상화와 상당히 닮아 있어 화가의 자화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오른쪽 전경에는 하얀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나르기 위해 마치 들것처럼 만들어진 나무 판자를 들고 있고 먼 배경에는 내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있으며, 백파이프를 연주 중인 악사들도 보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음식을 나르는 이들을 쳐다보고 있어 유머적인 요소도 함께 숨어있죠.

이처럼 브뢰헬은 각 인물들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한 순간의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포착하고 있는데요, 이는 악기 연주자의 허기진 표정이라든지 노인의 성마른 인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들의 시선은 입구의 군중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악사들과 음식을 나르는 두 남자들을 거쳐 음식을 식탁으로 옮기는 남자의 행동을 따라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신부에게 자연스럽게 향하게 되죠.

브뢰헬은 농부로 가장하고 시골에 가서 결혼잔치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는 이러한 그의 체험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가 그린 ‘농부의 결혼식’에선 농민들의 생활에 대한 브뢰헬의 따뜻한 시선과 공감, 그리고 유머가 느껴집니다. 여러분에게도 농민들의 소박한 삶이 따뜻함으로 전해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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