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정선 pro]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사안 중 하나는 바로 대기업과의 유착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국경제인연합회, 즉 ‘전경련’이 거론되고 있는데, 특히 이번 사태가 중대한 만큼 그에 대한 책임으로 전경련이 발족 55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하 전경련)은 종합경제단체로 한국의 주요 기업들로 구성되었고 법적으로는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다. 전경련은 최초 1961년 ‘경제인 및 경제 각 부문의 연결을 도모하고 산업/경제 전반에 걸친 의견 종합 및 구현을 위해 노력하며, 아울러 주요 산업의 개발과 국제경제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건전한 국민경제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 한다'라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전경련의 가입자격은 일반 경제단체와 대기업에 한하여 주어지며,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단체가 아니므로 가입과 탈퇴에 강제성은 없다. 그리고 창립 당시 회원 13명이던 전경련은 현재 국내 기업 600여개가 속해 있는 국내 최대의 경제단체로 성장하였다. 현재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 회관의 건물은 1979년 11월 준공되었다.

전경련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많은 영향은 미쳤다. 정부의 정책수립이 정비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 전경련은 민간경제계의 경험과 우수한 인력을 동원해 근대화의 청사진을 마련하며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걸쳐 발전의 기틀을 구축했다. 그리고 각 기업의 역량을 발휘하며 국내뿐 아니라 국제화시대를 여는 다각적인 대외협력활동을 펼쳤다.

저명한 기업가들의 역량이 모여서일까, 전경련은 설립 초기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수출산업촉진위원회를 설립해 국내 공업 발전과 경제 성장의 큰 역할을 한 한국수출산업공단(1963), 마산임해공업지대(1969), 여수-광양 임해공업지대(1970)의 조성을 주도했다. 그리고 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제금융공사(IFC), 국제개발협회(IDA) 및 미국·일본의 주요 은행과 합작투자로 국제개발금융기구의 전신인 한국개발금융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에도 전경련은 해외에 다각적인 기업의 진출을 촉진하는가하면 기업 애로사항을 호소하거나 정책을 개발-제안하는 경제단체 본연의 활동 외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한국의 성장을 세계에 알린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을 가리는 전경련의 치명적인 악습이 있었으니 바로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전경유착의 고리이다. 그로인해 전경련의 주요 기업 대표들이 세대마다 청문회에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는데, 1988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모금했고,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최순실 게이트 수사의 일환으로 또다시 대기업 총수들이 사이좋게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사안의 크기만큼 끊이지 않는 정경유착과 그 중심에 선 전경련에 대한 국민의 질타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심지어 해산의 목소리까지 거세게 나오고 있다. 국내 부정부패의 가장 큰 원인인 정경유착 고리역할을 한 전경련을 해체해 악습을 끊자는 취지에서 이다. 이에 공공기관 17곳 가운데 한국전력 등 9곳이 우선적으로 전경련에서 탈퇴했고 삼성과 SK그룹도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전경련이 존폐 기로에 내몰린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해체의 그늘이 드리워진 전경련. 물론 5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 경제에 이바지해 왔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동안 곪을 대로 곪은 정치-경제계 비리의 주축이었음을 통감하고 그에 합당한 결단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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