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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조선 무역의 변천 [키워드 한국사]

[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조선은 삼면이 바다이며 좌로는 중국, 우로는 일본이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당시 주로 무역의 대상이 되는 국가는 명, 여진, 왜 라고 할 수 있다.

   
 

명과 사대의 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은 사신 왕래를 통해 조공 무역을 행했다. 세종 이전가지는 매우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세종에 이르러서는 금과 은 세공이 면제되면서 경제적인 교류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여진과는 ‘진상 숙배’라는 관무역이 행해졌는데 진상(進上: 지방의 토산 물 등을 바침)하면 조선이 회사(回賜 : 되돌려 하사하다)하는 형식의 관무역이 행해졌다. 태종 6년에는 여진족들의 생활에 필요한 소금과 철을 자유롭게 사들이게 하여 변방의 우환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조선은 여진에게 시라소니, 해동청과 각종 모피 등을 진상 받았고 조선은 여진에게 면포, 베, 모시, 금은, 철기, 농구, 식기나 쌀 각종 곡식과 조미료 등의 식료품을 하사했다.

조선은 왜에게 삼포를 개방했는데(세종 25년, 1443), 세견선(歲遣船 : 대 일본 무역선) 50척으로 제한하였으며 주로 동래에 설치한 왜관(倭館 : 일본 사신과 상인이 머무르던 객사)을 중심으로 주로 대마도와의 무역을 행했다.

태종 7년(1407)에는 자유롭게 왕래하던 왜인들에 대한 통제를 위해 부산포와 내이포를 왜인의 도박처로 한정시켜 출입과 교역품을 통제했으며 상경 왜인에게는 한양에 동평관을 설치하여 숙소로 이용케 하였다. 왜와는 구리와 황, 향료와 약재 등을 수입하였고 쌀 인삼, 무명, 삼베, 서적 등의 생필품 등을 수출했다.

17세기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청과의 무역이 활발했다. 조선과 청은 매년 수차례씩 북경을 왕래한 사신을 통해 이뤄졌으며 역관이 무역을 주도했다. 정부는 역관들에게 무역량을 정해 놓은 팔포무역, 별포 무역 등의 연경 무역을 허가했다.

역관들은 청과 일본으로부터 염초와 유황 등 금지 품목을 밀수입하기도 했으나 청의 단속 강화와 염초의 국내 생산 기술의 발달, 그리고 국내에 유황 광산이 개발되면서 이런 밀무역은 점차 사라졌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요동 지방의 쌀 수입을 위해 처음으로 개시(開市:시장)를 개설했다가 1601년에 폐지하였다. 정묘호란이 끝난 후 후금에서는 조선에 개시를 요구하여 중강 개시와 회령 개시, 경원 개시가 열리게 되었다.

조선과 청나라 사신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만주 책문에서 의주 및 개성상인과 요동의 상인들 간에 사무역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책문 후시라 불렀다.

18세기에는 서울과 지방의 부상들이 사행원역과 결탁하거나 각 관아에 의탁하여 사행 무역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숙종때 잠시 시행됐던 책문 후시가 의주의 상인인 만상에게만 허염되면서 재개 되었다.

이로 인해 18세기 후반부터는 사상들이 대청 무역의 주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정조 1년인 1776년에는 서울의 모자전 상인(사치품인 털모자를 파는 상인)과 의주 상인이 직접 그들의 자본으로 모자를 수입하고 국내 판매를 전담하는 대신 정부에 모자세를 내게 한 세모법을 시행하였다.

정조 11년(1787)에는 가죽과 종이, 면 등의 수출이 막대하여 내수를 위협하자 책문후시를 폐지하였다. 하지만 이 조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개항 때까지 책문후시가 유지되게 된다.

조선은 공용 은화를 마련하고 역관을 부양하려는 목적으로 역관과 경강 상인에게 홍삼 120근을 최대로 1근에 포삼세 300냥을 부과하는 포삼제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만상과 송상을 배제한 채로 한정된 무역량과 높은 세금을 내야 했으므로 홍삼 밀조, 밀수출이 발생하는 등 19세기 대청 무역에서 홍삼은 주요 수출 상품이었다.

17세기 이후 조선은 왜와의 관계가 점차 정상화 되면서 동래에 설치된 왜관 개시를 통한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은 인삼 쌀 무명 등을 팔고 청에서 수입한 물품을 넘겨주는 중계무역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으로 부터는 은, 구리, 황, 후추 등을 수입했다. 이 중에서 은을 다시 청에 수출함으로써 중간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현재도 무역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청과 왜와의 직접 무역과 중개무역은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이호 기자  dlghcap@sisu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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