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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실패를 거듭 했었던 조선의 화폐, 상평통보로 우뚝 [키워드 한국사]
  • 뉴스제작국 | 이호 기자
  • 승인 2016.12.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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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조선시대의 화폐는 고려 공양왕 3년(1391)에 발행되었던 저화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화폐의 가치를 실용성에서 찾았기 때문에 쌀, 무명 등의 실물 화폐가 선호되었고 저화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이에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서조차 포화(布貨)를 국가의 화폐로 규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세종 5년인 1423년에는 당의 개원통보를 본뜬 조선통보를 발행했지만 농경이 위주였던 조선 초기의 화페는 유통에 실패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물물교환의 매개로써 동전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인조 11년(1633)에 주조된 상평통보(상평통보)는 개성을 중심으로 통용되었고 효종에 이어 숙종 때에는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평통보가 보편화 되자 국가에서도 조세와 소작료를 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동전의 가치가 커지자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됐다. 지주와 대상인들은 소작료나 상품 대금으로 얻은 화폐를 유통시키는 것 보다 고리대나 재산 축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동전의 발행량이 상당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이 되지 않아 동전이 부족한 전황(錢荒)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화폐의 가치는 점점 높아져 물가가 하락하였고 이는 곧 조세와 소작료를 동전으로 내야 하는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환, 어음 등의 신용 화폐 역시 점차 보급되었다. 이는 화폐 경제의 발전과 상업 자본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상업은 성리학 입장에서는 생산하는 것 하나 없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이익을 취하는 산업이라 하여 천하게 여겼다. 따라서 조선이 화폐를 발행했던 이유는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던 쌀과 면포가 중간 유통 과정에서 상하거나 유실 되는 등 손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손실을 막고자 함이었을 뿐 상업의 유통과 발전을 위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농업기술의 발달과 대동법의 시행으로 생산량과 유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상업이 발전하게 되어 화폐의 필요성과 수요는 점점 늘어났고 이런 이유로 인해 상평통보는 그 전의 화폐들이 실패했던 노선을 따르지 않고 유통에 성공하게 된다.  

이호 기자  dlghcap@sisu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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