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칼럼니스트]   종합편성채널(종편) ≪채널 A≫에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란 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1시부터 1시간 동안 탈북 여성들이 나와 북한의 실상과 탈북 과정, 대한민국에서의 겪고 느낀 에피소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편 프로그램 가운데는 시청률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만큼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외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보도를 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그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이 교육 문제로 집에 있는 텔레비전에는 케이블 방송을 차단해 놓고 있어 종편을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두 달 여 전에 구입한 테블릿PC를 보다 우연히 케이블방송을 지원해 주는 어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어 이미 방영된 ‘이․만․갑’ 프로그램까지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필자는 이 프로를 보면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은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만끽하게 된다.

   필자는 ‘이․만․갑’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재확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작금의 세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잘 작동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정착할 만한 평화와 번영과 행복의 땅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주지하듯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표현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모순을 내장하고 있으면서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화려한 산업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인류 사회의 높은 생활수준과 기대수명의 연장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2008년 무렵에 터진 세계 금융 위기를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지금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대단히 어렵고, 세계 경제 역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8년에 촉발된 위기는 일과성적인 일이 아니다. 사실은 이전부터 모순이 누적되어 왔다고 봐야 한다. 2008년에 끝내 문을 닫은 리먼 브러더스의 전직 임원이 쓴 『상식의 실패』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자본과 소비자들의 탐욕을 뒷받침하기에는 지구촌의 자원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주요국의 정치 리더십과 글로벌 거버넌스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바로 그렇다. 지나친 탐욕으로 지탱해 온 경제 체제는 지속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다른 대안은 없는 것 같지만, 적어도 끝없는 탐욕에 빠져 있는 ‘카지노 자본주의’로는 미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탐욕은 자본주의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는 미래로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의 환경위기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우리는 작금의 체제를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과 기회를 현존 세대가 미리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나친 경쟁에 따른 휴머니즘의 실종은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일찍이 선각자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인류 사회를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역저를 통해 소유형 인간보다는 존재형 인간이 되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를 얘기했는데, ① 원칙 없는 정치 ② 노동 없는 부(富) ③ 양심 없는 쾌락 ④ 인격 없는 교육 ⑤ 도덕 없는 경제 ⑥ 인간성 없는 과학 ⑦ 희생 없는 신앙이 그것이다. 수십 년 전에 내놓은 경고들이지만, 이 시점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 혁신하는 것인데, 혁신을 해내기에는 그 정신이 낡고 병들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더 심각하다. 우리는 가난과 고난을 뚫고 일어선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만,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에 대해 동의하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간디의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던진 화두라는 느낌이 들 만큼 대한민국은 중병을 앓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고 병들어 가고 있다. 1인당 GDP는 30위권인데 행복지수는 후진국들보다도 낮은 나라,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인 나라, 청렴지수가 후진국 수준인 나라, 빈부 격차가 최상위권을 향해 치닫고 있는 나라가 과연 살 만한지에 대해 우리는 자문자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점을 의식해서 ‘국민 행복’을 정부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국민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다. 물질적 성장에 맞먹는 정신적 성숙을 지향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산출하는 부(富)를 비교적 골고루 퍼지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장 긴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상호간에 유대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난 번 장관 청문회 때 재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지도층의 도덕 수준으로는 국민 행복 시대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국민 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다수 서민들의 박탈감 혹은 소외감 때문에 공동체 존속마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대기업의 수직적 지배구조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기업할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당수 대기업이 그러한가? 경제 민주화 이전에 법치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기업들이 수두룩하지 아니한가? 요컨대 대기업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글 자본주의’ 행태가 계속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을 보면 더 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 정치는 국가 발전의 선도자가 아니라 걸림돌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하물며 이런 국회와 이런 정당으로 어떻게 ‘국민 행복 시대’를 전개할 수 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주권자인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몇몇 정치인들의 권력욕으로 점철되어 있는 반(反)민주적인 정치로는 내일을 기약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대한민국 대의 민주주의에 경고등에 켜졌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의 정상화는 대단히 중요한 국가적 과제임을 박근혜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한편으로, 정부와 정당과 국회의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1992년에 『역사의 종말』이란 유명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귀결되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체제에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이 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모습으로는 ‘역사의 종말’을 말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의 종말』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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