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비록 한국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이 어디냐고 하면 ‘월마트’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4820억달러(약 520조원)의 매출액을 발생시켰으며 210만 명에 달하는 글로벌 직원 수는 그 위세를 말해 준다.

이런 거대 유통기업의 시작에는 창업주 ‘샘 월튼’이 있었다.

- 1달러의 가치를 소중히 하다

샘 월튼(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잡지 판촉이나 신문배달 등 스스로 용돈을 벌었다. 대공황으로 미국 전체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도 우유를 직접 짜서 배달하는 등 생활력이 있었으며 학생 시절에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학생회장 직을 도맡아 하였다. 그는 이 리더십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고용하여 신문배달 사업을 운영해 그 어려운 시절에도 연 5천 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 젊은 시절의 샘 월튼(출처/위키피디아)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매우 작은 액수라고 할 수 있는 1달러를 소중히 여겼다. 그는 자신이 1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았고, 이는 고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그는 소비자가 그 1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월마트(출처/위키피디아)

-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늘린다

월튼은 1945년 자신이 갖고 있던 돈 5천 달러와 장인에게 빌린 돈 2만 달러로 아칸소 주의 뉴포트에 있는 벤프랭클린 잡화점을 매입했다. 그는 프렌차이즈 상점인 벤프랭클린 잡화점의 기존 시스템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 상품 공급자를 만나 싼 가격에 공급해 달라고 설득했다.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가격이 저렴하면 저렴할수록 매출이 몇 배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물건 하나의 이윤을 생각하기 보다는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총 이익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개업을 한 지 5년이 될 무렵에는 연 매출액 25만 달러를 달성하여 아칸소 주의 최고의 소매상점이 될 수 있었다.

▲ 80년대의 월마트(출처/위키피디아)

- 미래를 보다

월튼은 1962년 아칸소주 로저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첫 번째 월마트를 오픈했다. 그는 당시 월마트의 주요경쟁자인 백화점들이 매우 높은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것에 반해 구매가격에 단지 10~15% 정도의 낮은 마진을 붙여 유통업계에 진출했다.

첫 번째 월마트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으나 그는 광범위한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소도시의 외곽의 고속도로 근처에 자리 잡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월튼이 미래를 예측한 것으로 일단 땅 값 등 비용이 적게 들었으며 1980년대 들어서 미국 시민들의 생활 및 주거지 패턴이 도심에서 교외로 이동하자 구매자들의 접근이 오히려 매우 용이해졌다. 이로 인해 월마트 점포는 5년 만에 점포수가 24개가 되었고 이것은 월마트가 미국 최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 샘 월튼(출처/위키미디아)

- 일반적 통념을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라

그는 생전에 사업 성공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밝혔는데 그 중 월마트를 성공으로 이끈 말은 “일반적인 통념을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라.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방식을 택하고 있다면 그 반대로 가는 게 당신만의 영역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다. 내가 일생 동안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인구 5만 명 이하 소도시에서는 할인점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말이었다.”고 한 말이다. 그는 경쟁이 덜한 소도시를 기회로 보았고 미국의 자동차를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특성을 고려해 접근성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많은 상품, 저렴한 가격이면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 예상했고 그것은 곧 매출의 확대로 이어졌다.

기존의 유통기업과는 다른 노선을 시작했던 샘 월튼.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 중산층에게 월마트의 존재는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정도의 영향을 끼쳤다. 세계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월마트에는 고객의 1달러를 소중히 여기는 샘 월튼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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