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의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다. 오는 12월 10일이면 지명된 수상자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의외의 수상자 노벨 문학상의 ‘밥 딜런’이 스웨덴 한림원의 연락을 받지 않아 시상식 참석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이에 세간에서는 노벨상을 거부하는 사람이 또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은 무슨 이유로 거부한 것일까?

첫 번째 인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출처/hoover.com)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수상을 거부한 첫 사례다.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은 18개국의 번역 됐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파스테르나크가 살던 소련에서는 혁명의 잔혹함과 자국의 사회상을 담은 이 소설을 거부했으며 그를 소련작가동맹에서의 제명은 물론 추방하겠다고 까지 선언했다.

조국을 떠날 수 없었던 파스테르나크는 탄언서를 쓰고 추방을 면하기 위해 노벨상도 포기했다. 이후 추방은 면한 파스테르나크는 작가로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번역작업을 주로하다 1960년 5월 30일 암으로 숨지게 된다. 조국에서 그의 작품이 출판된 것은 27년이 지난 1987년이었으며 그 후 2년 뒤 1989년 그의 아들이 노벨상을 대신 받았다.

두 번째 인물, 장 폴 사르트르

▲ (출처/플리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였던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의지로 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물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이 평가 받는 것과 서구 1세계 위주로 돌아가는 노벨상 풍토를 비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는 혁명적 좌파였지만 소련의 헝가리, 체코 침공에 단호히 반대하고 미국의 베트남 참전도 강력하게 비난을 한 인물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에도 적극적인 지지는 물론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실천적으로 행동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부터 거부 의사를 표현했으며 수상자 발표 후에도 “노벨위원회의 평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이유를 밝히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세 번째 인물, 레둑토

▲ (출처/플리커)

1973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베트남 총리 레둑토는 당시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했던 베트남의 상황을 이유로 상을 거부했다.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여러 방면에서 회자 되고 있다.

그가 노벨평화상으로 결정된 이유는 베트남 전쟁 종결과 함께 파리 평화협정을 이끈 공로을 인정됐기 때문이다. 레둑토는 1968년 베트남 화평교섭을 위한 파리회담의 월맹 측 대표단 특별고문이 되어 1969년 8월부터 미국 측의 대통령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비밀교섭을 해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다. 베트남 전쟁은 끝이나고 공로를 인정받아 키신저와 공동으로 197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으나 거절하였다. 

노벨상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영광이기도 한 상이다. 그동안의 세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개인과 국가의 공을 치하하는 상이지만 정치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거부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밥 딜런의 수상이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지만 국제적인 잔치인 만큼 12월 10일 수상식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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