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 조선 전기, 양반은 무엇으로 먹고 살았는가 [키워드 한국사]

뉴스제작국l이호 기자l2016년 10월 16일  17:59:21

[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조선 전기 양반들은 어떤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을까? 양반은 관직에 대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과전과 녹봉, 자기 소유의 토지와 노비, 외거 노비(외부에 살면서 수확물을 바치는 노비)의 신공 등을 최대로 활용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였으며 주 수입원은 토지와 노비였다. 양반들은 주로 비옥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의 토지를 집중적으로 소유하였으며 농장의 형태를 이뤄 노비에게 직접 경작시키거나 농민에게 소작을 주어 생산량을 절반씩 나누어 가지는 병작반수를 행했다.

당시 양반들의 토지 소유 규모는 대략 200~300마지기(1마지기/약 200평) 정도였으며 2000마지기 이상을 소유한 양반도 있었다.

양반은 자기 토지가 있는 지역에 집과 창고를 지어 놓고 직접 노비를 감독하고 농장을 관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친족을 거주시키면서 대신 관리하게 하는 가작 경영을 했다. 때로는 이런 여건이 여의치 않을 때는 노비를 파견하여 농장을 관리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노비는 일정한 토지를 분급받아 책임을 갖고 경작한 뒤 수확물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15세기 이후 농장주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유망민(流亡民)을 모아 자신의 노비처럼 만들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데 이용했다.

조선 전기 양반은 약 10여 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이 넘는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비를 돈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지만 일천즉천(一賤則賤, 한번 노비는 영원히 노비다)에 따라 소비가 낳은 자식들도 자신의 노비로 삼았기 때문에 노비끼리 혼인을 시키거나 양인과 혼인을 시켜 수를 늘렸다.

양반은 노비에게 농경을 시키거나 가사를 돌보며 옷감을 짜게 했다. 다수의 노비는 주인과 따로 살며 주인의 땅을 경작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하였는데 양반은 이런 외거 노비들에게 매년 신공으로 포와 돈을 거뒀다.

현재도 그렇지만 조선 전기에도 경제의 중심에는 토지가 있었다. 토지가 많을수록 거둘 수 있는 수확물이 많았고 그 수확물은 양반의 지위를 올리거나 더 넓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였다.

풍족한 생활을 했던 양반들이지만 가진 사람들의 욕심이 더해 이들은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갈망하고 양민들에 대한 끝없는 수탈을 일삼았다. 돈이 돈을 모으는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 조선시대 전기는 현재와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호 기자  dlghcap@sisu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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