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겨루어서 이긴다”라는 뜻의 ‘승리’. 승리는 그것을 거머쥐는 승자에게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과연 모든 승자가 달콤한 희열만을 느낄까? 물론 대부분의 승자는 승취감에 흠뻑 취해 쾌재를 지르지만 간혹 승리가 남긴 쓴맛에 울상을 짓는 승자도 있다. ‘승리’가 남긴 ‘쓴맛’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승부를 겨룰 때에는 노력, 정성, 돈 등 여러 가지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 기쁨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승부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 부은 경우, 승자라는 타이틀을 얻었음에도 ‘희열감’보다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경우를 일컬어 ‘승자의 저주’라고 부른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하여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쉽게 말해 ‘승자에게 내려진 저주’라는 말로, ‘승자의 재앙’이라고도 불린다.

승자의 저주라는 용어는 최초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 등 세 명의 엔지니어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언급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이 멕시코 만의 ‘석유 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한 이야기를 승자의 저주의 예로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석유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추정하여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멕시코 만의 석유 시추권 입찰에 수많은 입찰자가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당시 2,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입찰가격으로 써낸 기업이 결국 시추권을 따내며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후에 멕시코 만의 석유매장량의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측정되었고, 결국 낙찰자는 1,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을 들며 카펜 등은 논문에서 ‘승자의 저주’라고 이름 붙이며 설명하였다.

그렇게 이 논문에서 처음 거론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은 후에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승자의 저주는 경매 외에도 ‘승소’와 ‘패소’라는 확연한 승부 결과가 나오는 법정에서 많이 쓰인다. 그리고 기업들의 인수 합병과정에서도 승자의 저주의 상황이 생기는데, 인수기업의 가치를 너무 높게 판단한 나머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수하지만 알고 보니 그 보다 현저하게 가치가 낮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의 대표적인 예로는 얼마 전 강남의 한 부지의 입찰과정에서 무려 10조원이라는 앞도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입찰에 성공한 H사의 사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입찰에 성공한 H사를 두고 과다 출혈을 운운하며 ‘승자의 저주’가 아닐지 하는 우려를 했고 실제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지의 가치가 향후에 어떻게 변모할지, 즉 ‘승자의 저주’가 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이렇듯 ‘승자의 저주’는 어떤 승부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용 또는 정성을 쏟은 것이 승자에게 ‘희열’보다는 ‘악영향’ 또는 ‘위험’ 등 상실감을 안기는 상황을 뜻한다. 쓰디쓴 승부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승부’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주 중요하다. 제대로 된 확실한 판단 없이 승부를 건다면 ‘승자’가 되어도 울상을 짓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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