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이후 잠들어 있다 112년 만에 2016 리우올림 종목으로 부활한 골프. 이번 리우올림픽 골프대회에는 남녀 개인전만 열려 금메달이 2개 걸려 있다. 남녀 각 60명씩 출전해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메달 주인을 정하게 된다.

출전선수 60명은 세계랭킹에 의해 순위별로 정하게 되는데 한 나라에서 최대 2명까지만 출전할 수 있고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4명 이상이 포함되는 국가에 한해 4명까지 참가자격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6명이 포진해 있어 박인비, 김세영, 양희영, 전인지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리우올림픽 골프 종목에 출전하게 됐다.

▲ 세계 랭킹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이끌고 브라질로 메달 사냥에 나설 감독은 바로 우리나라 골프 부흥기를 만든 ‘박세리’ (출처/LPGA홈페이지)

세계 랭킹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이끌고 브라질로 메달 사냥에 나설 감독은 바로 우리나라 골프 부흥기를 만든 ‘박세리’ 선수다. IMF로 경제 상황이 안 좋아 낙담하는 국민들에게 미 LPGA투어를 데뷔하자마자 2승을 거머쥐고 그해 신인왕을 수상하며 ‘박세리 성공신화’를 보여주며 자랑스러움을 선물했다.

이처럼 그녀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눈물의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이어졌다. 딸의 재능과 흥미을 알아본 아버지 박준철씨는 박세리 선수가 골프 선수로 활동하는데 있어 전폭적인 지지와 훈련을 도맡아 했다.

▲ 딸의 재능과 흥미을 알아본 아버지는 박세리 선수가 골프 선수로 활동하는데 있어 전폭적인 지지와 훈련을 도맡아 했다. (출처/SBS 아빠를 부탁해 방송)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확한 퍼팅을 완성시켜준 ‘묘지 훈련’이다. 박세리가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중학교 2학년 겨울, 박세리의 아버지는 박세리를 데리고 집 근처 공동묘지로 데리고 가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연습 스윙을 하라며 자리를 비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연습 스윙을 하며 그녀는 ‘혼자서 견디는 법’을 알았고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교한 샷을 구사해 ‘골프 기계’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 (출처/미국골프협회(USGA) 홈페이지)

그러나 그녀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2004년부터 메이저 대회 4승, 통산 22승으로 명예의 전달 입회를 코앞에 두고 부진하기 시작했다. 연습장-숙소-골프장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왔던 삶의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다 내려논 후에야 자신의 속도를 되찾은 그녀는 2006년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년여 만에 슬럼프를 극복했다.

이후 차근차근 승률을 쌓으며 2010년 5월 17일 LPGA 통산 25승을 달성하며 동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업적을 이뤘다.

▲ 010년 5월 17일 LPGA 통산 25승을 달성하며 동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출처/LPGA홈페이지)

제 71회 US 여자오픈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LPGA투어 생활을 마무리한 박세리. 현직 선수로서는 물러났지만 지도자의 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박세리는 대회를 앞두고 “골프가 단체 경기가 아니라서 팀 전술을 짤 수는 없지만 공격적인 김세영과 안정적인 박인비 등 이번 대표 팀은 최상의 조합을 자랑한다.”며 “우리 선수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금ㆍ은ㆍ동메달 싹쓸이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그녀가 보인 자신감처럼 그녀의 지도력의 첫 심판대가 되는 리우 올림픽. 부디 골프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순조로운 출발로 그녀에게도, 우리나라에게도 뜻깊은 올림픽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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